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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학 이기의 환단고기 감수 입증하는 『환단고기』등사본
등사본
등사(謄寫)는 謄(등)은 글을 베끼는 것, 寫(사)는 그림을 본뜸, 그대로 그림이다. 謄寫(등사)는 글과 그림을 기구로 박음/찍음이다. copy는 복사(複寫)보다 등사(謄寫)에 더 가깝다.
철필로 원지에 글을 쓰면 철판과 철필이 부딪치는 소리가 ‘가리가리’하는 소리가 난다. 그래서 한때 ‘가리방(がりばん[がり版])’이라고 불렀다. 등사란 기름 먹인 원지를 철판에 올려놓고 철필로 끍어 글씨를 쓴 뒤 이 원지를 등사판에 붙이고나서 시커먼 콜타르 같은 잉크 묻힌 롤러를 굴리면 종이에 글자가 찍혀 나온다. 나무로 짜 맞춘 액자 같은 판을 흔히 ‘등사판’이라 부른다. ‘유인물(油印物)’이라는 말은 바로 기름잉크 묻은 롤러를 밀어 등사판으로 인쇄한 문서라는 뜻에서 연유한 것이다
등사판은 복사기가 등장하기 전인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많은 이들에게 애용됐다. 방 안에서 혼자 수백 장의 문서를 찍어낼 수 있으므로, 대일항쟁기 독립운동가들은 등잔불 아래서 등사판을 밀어 은밀하게 유인물을 만들어 뿌렸다. 3·1운동 때 독립선언서는 서울의 인쇄소에서 2만여 장만 인쇄됐지만, 그 몇십 배의 선언문이 등사판으로 복사본을 찍어낸 덕분에 방방곡곡으로 뿌려졌다
환단고기 등사본
『 환단고기』 등사본은 「삼성열기」,「단군세기 서」 「단군세기」, 「북부여기 상」 「북부여기 하」로 구성된 47쪽의 등사본으로된 <환단고기>라고 쓰여 있는 책을 말한다. 이는 「태백일사」와 「삼성기 하」가 빠진 <환단고기>로써 그 내용은 1979년 출간된 『환단고기』 광오이해사본,배달의숙본과 내용면에서 90퍼센트 이상 같으나 다른 부분이 조금 있다.
『환단고기』 등사본은 그동안 강단사학계에서 『환단고기』초간본(1911년 계연수 발행)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던 주장을 정면 반박할 수 있는 확실한 증빙자료가 된다.
『환단고기』 등사본은 말그대로 『환단고기』라고 표지에 쓰여져 있다. 이유립 선생 소장본 환단고기가 아니다. 이유립 선생이 79년 환단고기를 세상에 내놓기전 이미 있었던 책이다.
그동안 위서론자들은 "환단고기에 관한 내용은 모두 이유립의 손에 의해서 나왔다"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1979년에 환단고기가 발간되기 직전까지 환단고기의 내용을 고치고 있었다"는 위서론자들의 주장도 거짓임이 판명된다.
『환단고기』란 이유립 선생이 세상에 출간하기 이전부터 그냥 『환단고기』 였다는 것을 『등사본 환단고기』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이는 『환단고기 초간본』이 1911년 계연수 선생에 의해서 편저되었다는 주장이 맞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빙문헌이다.
운룡도서관 이명우 이사장은 1911년에 계연수가 『환단고기』를 편찬하기위한 1909년의 초고(草稿) 자료라고 추정하고 있다.
해학 이기 선생 주석(李沂註)이 붙어 있다.
박찬화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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