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대회논문
『환단고기』에 담긴 개천開天의 철학적 근거와 의미
양재학(상생문화연구소)
목 차
1. ‘개천’이란 무엇인가?
2. ‘개천’의 철학적 근거와 의미
1) 천원지방天圓地方의 구조와 하늘의 열림[開天]
2) ‘원방각圓方角’의 사유와 개천
3) 우주론에서 말하는 ‘개천’
3. 개천, 인류사의 첫 출발 – 배달국 이전의 ‘환국桓國’으로
1. ‘개천’이란 무엇인가?
개천절은 한민족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한민족은 매년 10월 3일을 우리 조상이 최초로 나라를 세운 경축절로 삼아 기념하고 있다. 원래의 개천절은 양력 10월 3일 아니다. 더욱이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나오는 단군조선의 개국을 기념하는 날도 아니다. 개천절의 유래는 음력 10월 3일에 하늘과 땅의 신령한 열림을 섬기는 제천祭天 문화에서 비롯되었다. 『삼국유사』와 『환단고기桓檀古記』는 ‘개천開天’을 공통 주제로 다룬 소중한 역사서다. 다만 전자는 역사적 ‘개국開國’에 방점을 찍고 짧게 언급한 반면에, 후자는 한민족 역사의 뿌리를 새롭게 밝히고, 더 나아가 ‘개천’은 인류문명의 시초를 알리는 위대한 선언인 동시에 ‘홍익인간弘益人間’ 이념의 근거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기술하고 있다.
더욱이 『환단고기』는 인더스 문명, 황하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 이집트 문명보다 앞서 인류 최초의 나라가 열린 역사의 시점을 ‘개천’이라 풀이하였다. 우리 조상이 세운 배달국은 4대문명보다 훨씬 이전에 건립된 고대 국가라는 것이다. 그러나 『삼국유사』는 한민족의 시조인 단군이 처음으로 개국한 날을 개천절로 해석할 여지를 남기고 있다.
우리나라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등장하는 건국 이야기는 단군왕검을 신화적 인물로 전제한 다음에 역사와 전설과 민속신앙을 혼융하여 기술하고 있다. 특별히 개국開國에 대해 『삼국유사』「고조선」조에는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에 단군왕검이 있었다.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열어 조선이라 하였으니, 요임금과 같은 시기였다.”라는 내용이 있다. 이를 바탕으로 역법가들이 달력 구성의 법칙을 거꾸로 계산한 결과, “10월 3일의 개국절開國節을 개천절로 삼는 전통이 자리잡게 되었다.”
이러한 인식은 마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 1917-2012)이 말한 ‘만들어진 전통(Invented Tradition)’의 한 사례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홉스봄은 국경일이나 의례 또는 민족적 상징물들이 실제로는 국민국가가 성립한 후 국민 통합이나 국가 공동체에 대한 충성을 고취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임”을 지적한 바 있다. 정영훈은 홉스봄의 견해에 동조하면서 “개천절은 현대 한민족을 ‘만든’ 상징 기제 중의 하나”라고 들먹인다. 특별히 한말韓末에 이르러 ‘단군의 자손’이라는 의식을 대중적으로 공유하면서 신분과 지역을 초월하여 하나의 민족이요 공동운명체라는 의식을 갖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단기 연호와 개천절 및 홍익인간의 교육이념이 국가의 제도 의례 속에 편입되는 과정을 ‘단군민족주의의 제도화’라는 관점에서 분석하였다.
한마디로 이러한 연구 방법의 특정 부분은 참고 사항이 될 수 있으나, 그 자체가 바로 홉스봄이 말한 ‘만들어진 전통’을 반복하는 오류에 매몰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아직도 고조선은 단군왕검이 세웠고, 그 건국 이념은 ‘홍익인간’이라는 믿음을 굳게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군왕검 이전에 환웅이 있었고, 또한 고조선 이전에 실재했던 배달국의 존재에 대해 전혀 무지하거나, 이미 배웠던 지식을 부정하는 것에서 오는 불안감을 감추려는 심리에서 비롯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만약 단군왕검이 신화의 인물에 불과하고, 고조선의 실재가 허구라고 한다면 ‘홍익인간’은 가상으로 지극한 인간사랑만을 외친 가르침에 그칠 것이다.
하지만 『환단고기』는 고조선 이전의 배달국을 다스렸던 왕들의 연대와 업적을 기록하여 한민족의 조상을 단군왕검에서 환웅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하였다. 그럼에도 환인桓因과 환웅桓雄은 잃어버리고, 고조선의 단군왕검만을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고 있는 ‘기적의 논리’는 마치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옷을 입고 번화가를 활보하는 꼴은 아닐까?
『삼국유사』는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말했지, 단군이 하늘에서 하강했다고 말하지 않았다. ‘홍익인간’은 환인이 환웅에게 말한 것이지, 단군이 말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삼국유사』는 ‘개국’만을 언급했지, ‘개천’의 유래와 의의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않았다. 그러나 『환단고기』는 개국을 포함한 개천의 역사철학과 우주론적 의미를 다루었던 것이다.
지금까지는 고조선의 태동에만 초점을 맞춘 교육으로 말미암아 (환인과 환웅이 빠진) 단군의 역할과 행적에 관심을 가질 따름이었다. 즉 조상은 외면하고 후손을 앞세우는 이른바 불편한 진실에 중독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조차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고대사에 대한 잘못된 고증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하는 책임과 의무는 오로지 후손의 몫이다.
현재, 고대사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홍익인간’ 이념의 우주론적 근거가 먼저 밝혀져야 인간 사랑의 당위성은 물론 천지와 하나 되어 모든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보편타당한 ‘개천’의 철학적 의의와 함께 배달국 건립의 정당성 확보가 가능하다. 더 나아가 인간은 왜 천지의 율동에 발맞추어 심신心身이 하나되는(timeless mind, ageless body) 수행의 목적에 합당한 방법론을 세울 수 있는 까닭에 가장 먼저 천지는 어떻게 구성되어 시공이 열리는가의 문제부터 살펴야 할 것이다.
2. ‘개천’의 철학적 근거와 의미
1) 천원지방天圓地方의 구조와 하늘의 열림[開天]
개국과 개천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개국의 의미는 보통 나라를 여는 이유와 목적과 그 이념에 맞춘 건국이라는 역사적 사건에서 찾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현대 법치국가의 헌법 정신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개천은 하늘과 땅이 열려 생명을 낳는 신성한 목적에 걸맞게 모든 인간을 보듬는 숭고한 정신으로 나라를 세웠다는 건국 이념도 함축한다.
사전적 의미에서 개천은 하늘과 땅이 벌어져 생명이 탄생시키는 순간, 혹은 시공간이 최초로 열려 만물의 터전이 생기는 경계를 뜻한다. 과거에는 ‘개천’의 의미를 어떻게 해명했는가? 인류 최초의 경전인 『천부경天符經』은 세계 구성의 근거인 천지인天地人의 구성 원리를 통해 ‘개천’을 3수 체계로 설명했으며, 『환단고기』는 천지인을 ‘원방각圓方角’의 기하학 도상으로 표현했다.
『천부경』은 환국 시대로부터 전해진, 숫자를 포함해 81자의 짧은 글로 성립된 인류 최초의 경전이다. 『천부경』은 비록 ‘개천’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으나, 『환단고기』 안에 편집된 부경』은 유불선의 뿌리라는 관점에서 개천의 의미를 포괄적으로 밝히고 있다.
『천부경』은 상경上經, 중경中經, 하경下經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中 | 本 | 衍 | 運 | 三 | 三 | 一 | 盡 | 一 |
天 | 本 | 萬 | 三 | 大 | 天 | 三 | 本 | 始 |
地 | 心 | 往 | 四 | 三 | 二 | 一 | 天 | 無 |
一 | 本 | 萬 | 成 | 合 | 三 | 積 | 一 | 始 |
一 | 太 | 來 | 環 | 六 | 地 | 十 | 一 | 一 |
終 | 陽 | 用 | 五 | 生 | 二 | 鉅 | 地 | 析 |
無 | 昻 | 變 | 七 | 七 | 三 | 無 | 一 | 三 |
終 | 明 | 不 | 一 | 八 | 人 | 匱 | 二 | 極 |
一 | 人 | 動 | 妙 | 九 | 二 | 化 | 人 | 無 |
상 경 | 一始無始一이오 析三極 無盡本이니라 天一一이오 地一二오 人一三이니 一積十鉅라도 無匱化三이니라 |
중 경 | 天二三이오 地二三이오 人二三이니 大三合六하야 生七八九하고 運三四하야 成環五七이니라 |
하 경 | 一妙衍 萬往萬來하야 用變不動本하니라 本心本太陽 昻明하고 人中天地一이니 一終無終一이니라 |
“하나는 시작이나 무에서 시작된 하나이니라. 이 하나가 세 가지 지극한 것으로 나뉘어도 그 근본은 다함이 없어라. 하늘은 창조운동 근원되어 1이 되고, 땅은 생성운동 근원되어 2가 되고, 사람은 천지성공 근원되어 3이 되니, 하나가 쌓여 열로 열리지만 모두 3수의 조화라네. 하늘도 음양운동 3수로 돌아가고, 땅도 음양운동 3수로 순환하고, 사람도 음양운동 3수로 살아가니 천지인 큰 3수가 합해 6수 되니 생장성 7ㆍ8ㆍ9를 생함이네. 우주는 3과 4로 운행하고 5와 7로 순환하네. 하나가 오묘하게 뻗어나가 수없이 오고 가는데, 작용이 움직이지 않는 본체로 탄생하네. 우주의 근본은 마음이니 태양을 본받아 한없이 밝고, 사람은 천지를 꿰뚫어 태일이 되느니라. 하나는 끝이나 무에서 끝나는 하나이니라.”
『천부경』은 우주의 구성 문제를 비롯하여 자연의 생성변화와 인간 삶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상경은 우주에 대한 형이상학적 구성 원리를 다룬다. 중경은 우주가 천지인의 기틀을 갖춘 다음에 펼쳐지는 현실의 변화와 작용을 다루고 있다. 하경은 인간의 자아 완성을 통해 천지인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가능성 차원을 보듬고 있다.
『천부경』에 나타난 천지인은 삼위일체三位一體라 말해도 틀리지 않는다. 원래 ‘삼위일체’라는 말의 trinity는 ‘하나로 통일된 셋’이란 뜻의 ‘tri-unity’에서 유래했다. “천일일天一一, 지일이地一二, 인일삼人一三”에서 ‘천일天一, 지일地一, 인일人一’의 하나[一]는 세계를 구성하는 근본 요소로서 세상의 모든 것은 천지인의 세 요소를 갖추었다는 뜻이다. 하늘은 1, 땅은 2, 사람은 3이라는 의미는 천지인 3재가 생겨나는 시간적․사실적 순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천지인 구성의 논리적 선후 관계를 지적한 것이다.
天 | 一 | 一 |
地 | 一 | 二 |
人 | 一 | 三 |
天 | 一 | 一 |
地 | 一 | 二 |
人 | 一 | 三 |
(도표 1) (도표 2)
天 | 二 | 三 |
地 | 二 | 三 |
人 | 二 | 三 |
天 | 二 | 三 |
地 | 二 | 三 |
人 | 二 | 三 |
(도표 3) (도표 4)
『천부경』은 우주의 구성을 하늘, 땅, 인간의 삼자가 원래부터 균형을 이루면서 존재한다고 했다. 다만 천지인의 논리적 선후 관계로는 하늘이 가장 앞서고[一], 그 다음은 땅이며[二], 마지막이 사람[三]이라는 것이다. 하늘과 땅과 사람의 가치가 일정한 순서대로 정해진다는 뜻이 아니다. 그 위상과 구조가 하늘은 위, 땅은 아래에, 사람은 하늘과 땅의 중간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천부경』에서 말하는 ‘1[一]’은 우주를 구성하는 공통의 삼요소라는 것(도표 1)을 대변한다. 그럼에도 하늘은 ‘1’, 땅은 ‘2’, 인간은 ‘3’으로 규정한 것(도표 2)은 하늘로부터 비롯된 천지인의 원초적 본성의 내부 질서를 밝힌 것이다. 한편 천지인이 ‘2[二]’를 공통으로 삼는 것은 음양陰陽으로 작용하는 법칙(도표 3)의 보편성을 얘기한 것이며, ‘3[三]’은 세상이 아무리 음양으로 변한다고 할지라도 우주 구성의 3수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도표 4)을 뜻한다.
상경上經과 마찬가지로 중경中經도 천지인이 각각 둘로 나뉘어 작용한다는 3수의 틀을 고수하고 있다. 3이 천지인을 형성하는 기본 틀이라면 2는 하늘에서는 음양陰陽으로, 땅에서는 강유剛柔로, 인간으로는 인의仁義로 나뉘어 생성 변화하는 것을 뜻한다. 우주의 본체[一]가 음양으로 분화한 다음에[二] 다시 인간이 참여하는 경계에 이르러야[三] 비로소 천지인의 조화 틀을 갖추고 역사 현실이 펼쳐진다는 것이다. 여기서 바로 『환단고기』가 말하는 ‘개천’의 의미가 투영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중경은 상경에서 얘기한 형이상학 이론에 의거하여 ‘1→2→3’의 질서를 유지하면서 작용의 세계로 접어든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주의 본체를 상징하는 ‘1’은 무엇을 근거로 열리는 것인가?
그것은 아마도 인간의 감각을 초월하거나 사유의 범주를 뛰어넘는 『천부경』에서 말하는 ‘무無(혹은 텅빈 공간[空])’은 아닐까? 무는 과연 인간이 구상한 허구에 불과한 것인가, 참되게 존재하는 실재인가? 인류는 삶의 터전인 시간과 공간을 어떻게 그려냈을까? 서양의 피타고라스(Pythagoras: ?-?)는 우주를 질서와 장식이라는 뜻의 ‘코스모스’라 불렀다. 그는 일찍이 산술은 수 자체를 공부하는 것이고, 음악은 시간에 따른 수를 공부하는 것이고, 기하학은 공간에서 수를 공부하는 학문이며, 천문학은 시간과 공간에서 수를 공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20세기 초, 서역의 신강新疆 위구르 자치구에서 눈금 없는 직각자[矩; 곱자]와 컴퍼스[規; 그림쇠]를 들고 있는 복희伏羲와 여와女蝸의 모습이 그려진 그림이 발굴되었다. 문화 인류학자들에 의하면, 컴퍼스와 자의 기능은 나중에 『주역』을 형성한 2진법의 시초라고 추정한다. 『주역』의 기본 단위는 음효陰爻()과 양효陽爻(−)인데, 그것은 숫자 0과 1에 해당한다. 0을 나타내는 음()은 양(−)의 가운데를 구멍 뚫어 빈 공간으로 비워둔 모양을 뜻한다.
복희와 여와가 들고 있는 자와 컴퍼스의 기능은 음양보다는 오히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의미에 더 가깝다. 둥근 하늘은 3, 네모진 땅은 4라는 수학적 구조가 곧 천지의 존재 방식이라는 뜻이다. 천지가 움직이는 운동 방식이 음양이라면, 음양의 바탕을 이루는 틀 자체를 형상화한 것이 곧 천원지방이다. 그래서 『주역』은 “천지인 삼재에다 음양을 곱한다”고 말했지, 음양에 천지인 삼재를 곱한다고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천지인 삼재는 우주를 구성하는 근본 뼈대이며, 이러한 삼재 사이에 존재하는 균형과 힘을 묘사한 ‘(삼재)3×(음양)2=6효’라는 토대가 마련되었던 것이다. 천문학에서 말하는 하늘과 땅이 존재하는 방식에서 3은 원圓이고, 4는 사각형[方]을 뜻한다. 원 속에 사각형이 들어 있는 형상이 바로 ‘천원지방’의 핵심이다.
『환단고기』「삼신오제본기三神五帝本紀」에 ‘천원지방’이 나온다, “단군왕검께서는 직경은 1이고 원주가 3인 둥근 형태의 하늘과, 한 변이 1이고 둘레가 4인 방정한 형태의 땅의 창조 덕성[天圓地方]을 계승하여, 오로지 왕도를 집행하여 천하를 다스리시니 온 천하가 순종하였다.[王儉氏는 承徑一周三과 徑一匝四之機하사 專用王道而治天下하신대 天下從之하니라]”
그리스의 존재론이 우주 구조론構造論(Cosmology)이라면, 동양의 존재론은 우주 생성론生成論(Cosmogony) 쪽으로 기울었다는 지적이 있다. 동양 수학이 양量의 수학, 즉 대수학이었던 것처럼 천문학 역시 대수학적 천문학(=수리천문학)이었으며, 이 점에서 그리스의 기하학적 천문학과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이러한 평가는 겉으로 보면 반은 옮고 반은 그르다. 왜냐하면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天圓地方]’라는 우주의 구조에 대한 명칭 자체가 기하학의 본질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2) 원방각의 사유와 개천
천원지방은 과연 자연에 존재하는 수학적 질서를 찾아낸 것인가? 보이지 않는 하늘의 원리를 인간이 고안한 수학 체계로 정리한 결과물인가? 유형 무형한 자연의 패턴을 인간의 합리적 지성으로 구성한 체계가 수학이라는 입장이 있는 반면에, 원래부터 존재하는 자연의 수학적 본성을 인간이 정리한 것이라는 입장이 있다. 『천부경』은 후자의 입장에서 전자를 흡수한 형태를 반영하고 있다.
천문학은 하늘에 대한 과학이다. 그렇다고 천문학은 별자리와 행성의 움직임을 포착하는 과학의 범주에만 머물지 않는다. 왜 우주는 상하사방으로 한없이 펼쳐지는가라는 물음은 우주가 유한한가 혹은 무한한가의 형이상학으로 연결되는 한편, 천지를 구성하는 틀을 비롯하여 시간과 공간의 방향성을 숫자로 인식하는 수리철학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이웃나라 중국이 천원지방의 사유로 자연과 문명을 스케치했다면, 일찍이 동방의 환국, 배달, 단군조선에서는 ‘원방각圓方角’ 문화가 싹텄다. 전자는 ‘천지天地’라는 음양 2수의 문화 또는 천지 자체에 대한 인간 인식의 산물이다. 후자는 ‘천지인天地人’의 3수를 중시여긴 신교神敎 문화의 산물이다.
인류의 원형문화는 ‘천원지방天圓地方’ 혹은 ‘원방각圓方角’에서 비롯되었다. 원방각에 입각하여 천문학과 수학 및 『주역』이 출현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圓者는 一也니 無極이오 方者는 二也니 反極이오 角者는 三也니 太極이니라
원圓(○)은 하나[一]이니 하늘의 ‘무극無極 정신’을 뜻하고,
방方(□)은 둘[二]이니 하늘과 대비가 되는 ‘땅의 정신[反極]’을 말하고,
각角(△)은 셋[三]이니 천지의 주인인 인간의 ‘태극太極의 정신’이로다.”
‘원’은 하늘의 역동성과 변화성을 대변한다. 원은 시작도 없고 끝이 없는 둥근 형태를 이루는 하늘의 순환을 상징한다. 원은 언제 어디서나 차별 없는 공정성과 완정성을 대표한다. 방은 하늘과 비교해서 안정성을 대변한다. ‘각’은 삼각형의 꼭지점이 위에 하나가 있는 것은 하늘을, 아래에 두 개가 있는 것은 땅을 상징한다. 마치 사람의 머리가 하나이고 발이 두 개인 것처럼 인간은 천지와 합일된 존재를 의미한다. 삼각형에는 완전성과 조화성이 들어 있다.
「소도경전본훈蘇塗經典本訓」 역시 만물이 일자에서 다자로 전개되는 공식을 수식화한 『천부경』의 “천일일天一一 지일이地一二 인일삼人一三”의 1․2․3이라는 수의 원리를 바탕으로 삼았다. 1은 만물의 시작점으로 무無에서 시작한 하나라고 강조한다. 무는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 아니라, 모든 질서의 근원인 카오스, 즉 무극을 가리킨다. 하나의 조화에서 지극한 셋으로 나뉜다. 즉 ‘일극즉삼극一極卽三極’의 논리인 것이다. 이를 『삼일신고三一神誥』에서는 ‘집일함삼執一含三․회삼귀일會三歸一’의 원리로 전하고 있다. ‘하나 속에 셋이 있고, 그 셋이 일체가 되어 둥글어간다’는 우주의 삼위일체 섭리를 의미한다.
왜냐하면 『천부경』은 삼신일체三神一體의 사유가 밑바탕에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천일天一’의 하늘은 둥근 형태의 ‘○’로, ‘지일地一’의 땅은 네모 형태의 ‘□’, ‘인일人一’의 사람은 삼각형 형태의 ‘△’로 표시한다. 『환단고기ㆍ태백일사太白逸史』「소도경전본훈」은 천지인의 표상으로 ‘○, □, △’을 제시하면서 각각 ‘삼극(三極)'을 상징한다고 했다.
한자 | 도형 | 뜻 |
圓 | ○ | 하늘 |
方 | □ | 땅 |
角 | △ | 인간 |
삼극을 「소도경전본훈」은 무극과 반극과 태극이라 했다. “무극의 정신이 통일되어 있는 1이 천지인 3극으로 분화되어 다시 현상 세계의 본체를 이룬다는 것이다. 왜 무극에서 현실의 궁극의 존재인 하늘, 땅, 인간이 분화했는가? 그것은 무극 속에 조화신造化神, 교화신敎化神, 치화신治化神이라는 무극의 본체 삼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무극의 본체 삼신(조물주 삼신)이 자신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드러낸 것이 하늘, 땅, 인간이라는 것이다. 무극은 비록 눈에 보이지 않지만 현상 세계의 질서를 규정하는 주체이다. 이것이 ‘집일함삼執一含三’의 원리로 일극一極인 양기良氣가 삼기三氣 또는 무극․태극․황극으로 분화하고, 일신一神이 삼신三神으로 분화하고, 일체一體가 셋으로 작용하고, 더 나아가 단군조선이 삼한三韓으로 분화되고, 우리 몸에 성명정性命精의 삼진三眞이 존재하는 이유인 것이다.”
『천부경』을 비롯한 『환단고기』는 음양의 2수보다 3수를 더 중시한다. 그것은 3이 본체를, 2는 작용을 수식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본체가 먼저 존재한 다음에 작용이 생긴다는 의미가 아니다. 본체와 작용은 원래부터 하나로 존재할지라도 본체와 작용의 범주가 다르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본체만 중요하고 작용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작용은 본체가 어떻게 현실 속에서 전개되는가를 규정한 생성 차원의 범주라면, 본체는 작용의 범주를 넘어서 시공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오히려 본체와 작용은 떼려야 뗄 수 없는 ‘하나이면서 둘[一而二], 둘이면서 하나[二而一]’의 관계로 존재한다.
‘1[圓]→2[方]→3[角]’은 우선 하늘과 땅과 인간이 태어난 논리적 의미의 순서를 가리킨다. 이것을 괘의 구성(☰)으로 본다면 맨 위는 하늘, 맨 아래는 땅, 가운데는 인간이라는 천지인의 구성 틀을 의미한다. 그런데 나중에 3수와 2수 문화를 종합한 『주역』은 3수가 근본이고, 2수는 3수에 대한 작용이라고 표현했다. 괘가 어떻게 성립되었는가를 밝힌 「설괘전說卦傳」은 천지인 3재에 음양의 작용을 곱했다는 것을 말했다.
천지인 3재 중에서 인간을 제외한 천지(天地) 중심의 사유는 자연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과학의 정신과 일맥상통하는 ‘천원지방설’로 나타났다. 천원지방설이 자연과학과 가깝다면, 원방각 문화는 자연과학에다 생명과 가치 문제를 덧붙인 인문과학의 성격이 짙다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천원지방은 천문학과 수학의 주요 탐구 대상이었으나, 원방각을 중시하는 문화는 인문학의 핵심으로 존속되었다. 인간은 천지의 틀 안에서 하늘의 섭리에 의해 위로부터 주어진 생명의 이치대로 살다가 다시 원래의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과정을 ‘원방각’으로 도표화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3) 우주론에서 말하는 ‘개천’
우주의 구성과 생성을 얘기할 때, 『천부경』이 사용한 주요 술어는 무, 1, 3(극), 천지인, 근본과 작용 등이다. 『천부경』을 관통하는 핵심을 『환단고기』는 ‘삼ㆍ일 논리’라 일컬었다. 왜냐하면 『천부경』 논리의 수학적 분화 방식이 곧 ‘삼ㆍ일’ 논리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삼신일체三神一體의 신앙에 뿌리를 둔 『삼일신고三一神誥』의 가르침과 상통한다.
『환단고기』에는 ‘삼ㆍ일’ 사유의 용례가 매우 많다. 조화 ㆍ 교화ㆍ치화, 천ㆍ지ㆍ인, 성ㆍ명ㆍ정, 무극ㆍ반극ㆍ태극, 원ㆍ방ㆍ각이라는 ‘삼ㆍ일’의 조합은 자연과 문명과 인간을 관통하는 우주의 DNA라 할 수 있다. 3과 1은 한 몸으로 존재하지만, 세 가지 성격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것은 철학적 이론으로부터 파생된 산물이 아니라, 삼신일체 신앙에 유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3극 원리 | 無極 | 反極 | 太極 |
3재 | 天 | 地 | 人 |
공간의 구성 | 圓 | 方 | 角 |
자연과 인사 | 造化 | 治化 | 敎化 |
인간본성과 목숨 | 性 | 命 | 精 |
마음과 몸 | 心 | 氣 | 身 |
인식의 법칙 | 感 | 息 | 觸 |
『천부경』에는 신神 또는 삼신일체라는 말은 구체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천부경』은 삼신일체의 사상이 수리철학적 우주관으로 이념화된 경전이라 하겠다. 이 ‘삼ㆍ일’ 논리가 『천부경』의 핵심을 이루는 이유는 삼신의 손길로 우주가 구성되어 변화한다는 이치가 전제되었기 때문이다.
“『삼일신고』는 본래 신시개천 시대에 세상에 나왔고, 그때에 글로 지어진 것이다. ‘집일함삼’과 ‘회삼귀일’의 뜻을 근본 정신으로 삼고, 다섯 장으로 나누어 ‘하늘의 신, 조화의 근원’, ‘세계와 인물의 조화’에 대해 상세히 논하였다. 첫째 장 허공虛空은 우주 시공이 ‘일시무一始無’의 무와 함께 시작하고, ‘일종무一終無’의 무와 함께 끝나니, 이 우주는 외허내공外虛內空한 상태에서 중도의 조화 경계에 항상 머물러 있음을 밝히고 있다.[三一神誥는 本出於神市開天之世오 而其爲書也니라 盖以執一含三하고 會三歸一之義로 爲本領하고 而分五章하야 詳論天神造化之源과 世界人物之化하니 其一曰 虛空은 與一始無로 同始하고 一終無로 同終也니 外虛內空에 中有常也오]”
‘집일함삼’과 ‘회삼귀일’에 나타난 3과 1을 수식으로 정리하면 ‘1→3 또는 3→1’, ‘1↔3 또는 3↔1의’ 등식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둘이 본체로는 하나[一], 작용으로는 셋[三]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3ㆍ1’의 공식이 곧 우주의 상수常數라는 사실을 가리킨다. 그것은 형이상의 수의 질서인 동시에 현실을 지배하는 원리로 작동한다는 뜻이다.
우주의 중심에는 한결같이 지속되는 ‘3ㆍ1’의 맥놀이가 있다. 이러한 맥놀이는 작게는 쿼크 입자로부터 자연의 크고 작은 모든 곳에 영향을 끼친다. 본체와 작용[一體三用, 三神一體]의 중심에는 ‘1과 3 혹은 3과 1’의 싸이클로 움직이는 소리 없는 파동이자 리듬으로 꿈틀거리는 맥놀이가 있다는 것이다.
『천부경』이 ‘3극으로 나뉘지만 그 근본(유무의 통합 상태)은 알 수 없다[析三極 無盡本]’고 말한 이유는 무(무한)의 손길이 때로는 ‘1․3’으로, 혹은 ‘3․1’(신神)의 손길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무(무한)의 심장 소리는 ‘3․1’의 박자로 뛴다는 것이다.
이 세상의 근본은 ‘1’이며, 그 작용은 ‘3’이다. 만물은 숫자 1에 의거하여 3으로 분화를 거치는 동시에 끊임없는 변화를 순환하는 것이다. ‘1ㆍ3’을 확대하면 ‘일자一者와 다자多者’가 형성되며, ‘일자와 다자’의 관계를 축소하면 ‘3ㆍ1’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결국 우주의 근본인 ‘1’과 작용인 ‘3’은 둘이 아니라는 논리가 성립한다. 1이 곧 3이요, 3이 곧 1인 셈이다. 『환단고기』는 줄곧 ‘1ㆍ3’은 ‘3ㆍ1’로, ‘3ㆍ1’은 반드시 ‘1ㆍ3’로 귀결된다고 강조한다. 그것은 다만 1(본체)과 3(작용) 가운데 어느 것을 강조하는가에 따라 중심점이 달라질 따름이다.
‘1ㆍ3’ 논리와 ‘3ㆍ1’ 논리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전자는 하나가 셋으로 작용하는 방식을, 후자는 셋이 하나로 존재한다는 원리를 뜻한다. 『천부경』과 『환단고기』는 ‘3ㆍ1’의 방식을 근거로 인간도 동일한 매커니즘으로 만물을 인식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3ㆍ1’ 논리를 바탕으로 문명을 일구었다는 것을 얘기하고 있다.
『천부경』은 1로 시작해서 1로 끝맺는다. 1은 우주의 출발점인 동시에 종착점이지만, 1의 목적은 ‘무’라는 영원회귀처로 돌아가는 것에 있다. “1은 시작이나(1의 시작은) 무에서 시작한 1이며[一始無始一], … 1은 끝이나(1의 끝은) 무에서 끝나는 1이다.([一終無終一]” 무로 회귀하는 1은 애당초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우주의 시초를 뜻한다. 시작 없는 시작 혹은 끝 없는 끝의 정체가 - 『천부경』이 말한 근본[無盡本]이 - 곧 무한과 동의어일 것이다.
『천부경』의 ‘1․3’ 논리는 무無에 귀속된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없는 텅빈 공간의 무를 의미하지 않는다. 무는 오히려 유와 만물을 탄생시키는 최종 근거이다. “무는 유형에 대한 무형의 ‘없음’이 아니다. 오히려 모든 것은 없음[無], 즉 무라는 바탕 위에 존재한다. 무 없는 우주는 무대 없는 극장과 같기 때문이다. 무는 그 불변성으로 인해 우주를 만드는 가장 근본적인 재료가 된다. 무가 변했을 때, 우주가 탄생한다. 무無가 유有로 변한 것이다. 무는 유의 근거이며, 유는 무의 파생물인 것이다.”
그러니까 무의 완벽한 대칭이 깨지는 경계, 즉 현실의 세계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유형의 만물이 무로부터 빚어진다는 것이다. 무는 우주를 만드는 일종의 암흑물질(dark matter)과 암흑에너지(dark energy) 자체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1은 십진법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여러 숫자 중의 하나가 아니라, 1은 무와 유의 한몸에서 만물을 생성시키는 궁극적 이치를 상징한다. 따라서 무로부터 1이 생겨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우며, 무와 1, 1과 만물(유의 세계)를 비롯한 본체[無]와 작용[用]의 소통은 무(무한)의 품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합당한 귀결이다.
‘1’의 열림이 바로 개천이다. ‘1’을 바탕으로 자아의 완성을 위한 심신心身 수행의 목적과 방법은 1에서 시작하여[一始無始一] 1로 돌아간다[一終無終一]는 『천부경』에서 국가의 통치 이념의 성립 근거가 곧 개천이며, 또한 그것은 개국의 당위성으로 직결되는 사유의 원형을 찾을 수 있다.
“만물의 큰 시원이 되는 지극한 생명이여! 이를 양기라 부르나니 무와 유가 혼연일체로 있으며, 텅 빔과 꽉 참이 오묘하구나. 삼[三神]은 일[一神]로 본체[體]로 삼고, 일은 삼으로 작용[用]으로 삼으니, 무와 유, 텅 빔과 꽉 참이 오묘하게 하나로 순환하고, 삼신의 본체와 작용은 둘이 아니로다.[大一其極이 是名良氣라 無有而混하고 虛粗而妙라 三一其軆오 一三其用이니 混妙一環이오 軆用無岐라]”
한민족의 정신을 온전히 담고 있는 『환단고기』는 ‘무유이혼無有而混’ 혹은 ‘허조이묘虛粗而妙’ 및 ‘혼묘일환混妙一環’과 ‘체용무기軆用無岐’라는 표현을 통해 유무의 통일상에 대한 깨달음을 강조하였다. 애당초 이것과 저것의 구분을 무너뜨리는 궁극의 혼합[混], 형이상의 이치와 형이하의 현상(현실)이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一而二 二而一]’로 통일된 상태를 형용한 술어가 곧 ‘미묘함[妙]’이다. 그리고 앞의 둘을 하나로 묶은 ‘하나의 둥근 고리[一環]’와, ‘본체와 작용은 둘로 나뉠 수 없다[軆用無岐]’라는 표현은 만물의 보편타당성[常]이 곧 ‘3ㆍ1’의 존재방식이라는 『천부경』의 가르침과 하등 다르지 않다는 것을 증명한다.
유무를 안팎으로 꿰뚫어 모든 생물체의 본질을 하나로 묶어주는 우주론적 항상성[常]이 바로 무(무한)이다. 그것은 또한 시공을 통틀어 언제 어디서나 공감할 수 있는 항구적 지속성[常]을 가리킨다. 위 대목은 유무의 통일성을 다양하게 기술함으로써 무한의 포괄성을 한층 두드러지게 하는 문장 기법이 돋보인다.
“대저 삼신일체의 도는 ‘무한히 크고 원융무애하며 하나되는 정신[大圓一]에 있으니, 조화신이 내 몸에 내려 나의 성품이 되고, 교화신이 내려 삼신의 영원한 생명인 나의 목숨이 되며, 치화신이 내려 나의 정기가 된다. 그러므로 오직 사람이 만물 가운데 가장 고귀하고 존엄한 존재가 된다. 대저 성이란 인간의 신(신명)이 생겨나고 자리를 잡는 근거와 바탕이다. 신이 성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성이 곧 신인 것은 아니다. 기가 환히 빛나 어둡지 않은 것이 곧 참된 성품이다. 그러므로 신은 기를 떠날 수 없고, 기 또한 신을 떠날 수 없으니, 내 몸 속의 신이 기와 결합된 후에야 내 몸 속의 본래 성품과 나의 목숨을 볼 수 있다. 성품은 저마다 타고난 목숨과 분리될 수 없고, 목숨도 성품과 분리될 수 없다. 그러므로 내 몸에 깃든 성품이 목숨과 결합된 뒤라야 내 몸 속에 신화神化하기 이전의 본래 성품과 내 몸에서 기화氣化하기 이전의 본래 목숨의 조화 경계를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이러한 본성에 담긴 신령스러운 지각의 무궁한 조화 능력은 하늘의 신과 그 근원을 같이 하고, 인간의 본래 목숨이 생명으로 발현됨은 자연의 산천과 그 기를 같이 하고, 인간의 정기가 자손에 이어져 영원히 지속함은 창생과 천지의 이상세계를 이루어가는 과업을 함께 하고자 함이다. 이에 하나 속에는 셋(삼신)이 깃들어 있고, 셋(세 손길로 작용하는 삼신)은 하나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원리가 그것이다(하나 속에 셋[조화․성, 교화․명, 치화․정]이 있고 셋은 그 근본이 하나 속의 신의 조화이다)[夫三神一軆之道는 在大圓一之義하니 造化之神은 降爲我性하고 敎化之神은 降爲我命하고 治化之神은 降爲我精하니 故로 惟人이 爲最貴最尊於萬物也라 夫性者는 神之根也라 神本於性이나 而性未是神也오 氣之炯炯不昧者가 乃眞性也라 是以로 神不離氣하고 氣不離神하나니 吾身之神이 與氣로 合而後에 吾身之性與命을 可見矣오 性不離命하고 命不離性하나니 吾身之性이 與命으로 合而後라야 吾身의 未始神之性과 未始氣之命을 可見矣니라 故로 其性之靈覺也는 與天神으로 同其源하고 其命之現生也는 與山川으로 同其氣하고 其精之永續也는 與蒼生으로 同其業也니라 乃執一含三하고 會三歸一者가 是也니라]”
이는 ‘삼ㆍ일’ 사유의 극치에는 무(무한) 관념과 삼신일체의 종교적 신념이 깔려 있다는 증거가 분명하다. ‘삼ㆍ일’ 이념의 연원이 철학인가, 종교인가의 양자택일은 별로 의미가 없다. 오히려 종교와 철학과 수학의 삼중주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판단이 가장 합당할 것이다.
『환단고기』 곳곳에는 삼신일체 사상에 근거하여 ‘삼․일’ 사유가 나타난 것이라는 대목을 알 수 있는 내용이 많다. 삼신이 곧 일신이요, 일신이 곧 삼신으로 드러나는 신의 손길에 의해 세상이 둥글어간다는 것이 바로 고대 한민족의 심성에 배어 있는 일종의 순수한 종교관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삼․일’ 논리는 우주관을 비롯해 신관, 인간관, 생명관 등을 관통하는 핵심으로 자리 잡아 ‘개천’ 의식을 싹트도록 만든 원동력으로 작동했던 것이다.
3. 개천, 인류사의 첫 출발 – 배달국 이전의 ‘환국桓國’으로
『삼국유사』는 민족사의 출발을 BCE 2,333년으로 못박고 있으나, 『환단고기』는 『삼국유사』가 잃어버린 한국사의 진정한 출발은 배달국을 넘어 환국桓國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사실을 수록하고 있다. 우리는 과연 양자의 주장에서 어느 편에 손들어야 할 것인가? 그것은 애국심에 호소하는 양자택일의 논쟁을 넘어서 한국사의 원형에 가까운 민족혼의 문제와 직결되는 까닭에 역사학, 고고학, 문헌학, 문자학, 언어학, 철학, 신화학을 통틀어 방대한 분야를 꿰뚫는 정신사와 지성사의 확립을 통하여 진실의 문에 다가서야 할 것이다.
『환단고기』는 하늘의 열림[開天]과 최초의 나라 세움[開國]은 물론 ‘개천’과 동일한 의미의 ‘계천繼天’을 언급하고 있다. ‘계천’은 하늘의 의지에 근거한 선왕의 역사적 사명을 삶의 가치와 실천의 기준으로 몸소 이어받는다[繼天]는 계승의 논리요, ‘개천’은 말 그대로 하늘과 땅이 열려 생명을 일궈내는 하늘의 섭리를 뜻한다.
전자가 문명의 열림과 국가 성립의 정당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후자는 생명을 낳고 낳는 하늘의 법도는 만물의 존재 의미와 삶의 준거라는 의미가 짙게 배어 있다. 이 둘은 같으면서도, 다르면서도 같다. 왜냐하면 ‘개천’과 ‘계천’은 똑같이 보편타당한 우주의 이치에 의거하여 하늘의 명령을 구현해야 한다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환국 이래의 전통과 문화를 간직한 『천부경』은 한민족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문서이다. 『천부경』에는 한국인의 ‘혼과 얼’이 아로 박혀 있다. 그 실체가 바로 ‘3ㆍ1’의 박자와 리듬이다. 『천부경』의 정신을 계승한 『삼일신고』 역시 ‘3ㆍ1’ 논리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배달이 실로 환웅천황의 신시 개천 이래 백성을 모아 ‘전佺의 도’로써 계율을 세워 교화하였습니다. 『천부경』과 『삼일신고』는 역대 성조들이 조명詔命으로 기록하였다.[國子師傅有爲子가 獻策曰 惟我神市는 實自桓雄으로 開天納衆하사 以佺設戒而化之하니 天經神誥는 詔述於上하고]”
그리고 「삼신오제본기三神五帝本紀」는 신비 체험의 언어로 ‘개천’의 신성함과 우주 생성의 합리성을 전하고 있다. 신의 도시[神市]라는 말은 신령으로 가득 찬 태고의 신비를 간직하고 있다. 「삼신오제본기」는 환인·환웅·단군왕검이 삼신의 창조 정신과 만물의 법칙을 본받아 역사적 소명 의식과 시대적 사명을 몸소 구현한 업적을 열거하고 있다.
“환인께서는 1수水가 7화火로 변하고, 2화火가 6수水로 변하는 물과 불의 순환의 운運을 계승하여, 오직 아버지의 도를 집행하여 천하 사람들의 뜻을 하나로 모으시니 온 천하가 그 덕에 감화되었다. 신시 환웅[神市氏]께서는 하늘이 물을 창조[天一生水]하고, 땅이 불을 화생[地二生火]하는 천지의 물과 불의 근원적 생성 원리를 계승하여, 오직 스승의 도를 집행하여 천하를 거느리시니 온 천하가 그를 본받았다. 단군왕검께서는 직경은 1이고 원주가 3인 둥근 형태의 하늘과, 한 변이 1이고 둘레가 4인 방정한 형태의 땅의 창조 덕성[天圓地方]을 계승하여, 오로지 왕도를 집행하여 천하를 다스리시니 온 천하가 순종하였다.[桓仁氏는 承一變爲七과 二變爲六之運하사 專用父道而注天下하신대 天下化之하며 神市氏는 承天一生水와 地二生火之位하사 專用師道而率天下하신대 天下效之하며 王儉氏는 承徑一周三과 徑一匝四之機하사 專用王道而治天下하신대 天下從之하니라”
환인은 삼신의 창조 섭리인 물불[水火]의 순환 운동을 아버지의 법도로 계승 집행했으며, 환웅은 물불의 생성 원리를 스승의 법도로 계승 집행했으며, 단군왕검은 천원지방天圓地方의 법도로 왕도를 실천하였다. 환인과 환웅과 단군왕검은 한결같이 자연이 그려내는 법도에 근거하여 세상을 다스렸다는 뜻이다.
“무릇 천하의 만물이 개벽을 따라서 생존하고, 진화를 따라서 존재하며, 순환을 따라서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凡天下一切物이 有若開闢而存하며 有若進化而在하며 有若循環而有하니라.]”
『환단고기』는 개천의 철학적 의미를 크게 개벽(Great Opening)과 진화(Evolution)와 순환(Circulation) 개념으로 만물의 존재 의미와 변화상을 표현했다.
“아침 햇빛 먼저 받는 이 땅에 삼신께서 밝게 세상에 임하셨고, 환인천제 먼저 법을 내셔서 덕을 심음에 크고도 깊사옵니다. 모든 신이 의논하여 환웅을 보내셔서 환인천제 조칙 받들어 처음으로 나라 여셨사옵니다.[朝光先受地에 三神赫世臨이로다 桓因出象先하사 樹德宏且深이로다 諸神議遣雄하사 承詔始開天이로다]”
6세 단군은 신지神誌 발리發理로 하여금 실제로 존재했던 환인과 환웅이 남긴 법통과 업적을 역사에 남기도록 했다. 발리는 「서효사誓効詞」에서 한민족의 뿌리를 밝히고, 개천의 장엄한 광경을 읊었던 것이다.
‘삼신’의 거룩함과 ‘환인 – 환웅천황’의 정통성을 밝혔으며, 그것은 미래의 단군왕검이 나라를 세우는 기틀로 작용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서효사」는 개국을 개천의 위상으로 드높임으로써 한민족의 자존감을 자랑하는 힘이 되었다.
“성인을 보내어 세상을 다스리는 것을 일러 개천開天이라 하니, 하늘을 열었기 때문에 만물을 창조할 수 있다. 이것이 곧 이 세상이 하늘의 이법(천리)과 부합되어 하나로 조화[虛粗同體]되는 것이다. 인간의 본래 성품(인간 속에 있는 삼신의 마음)을 여는 것을 개인開人이라 하니, 사람들의 마음자리를 열어 주기 때문에 세상일이 잘 순환하게 된다. 이로써 형체와 함께 영혼이 성숙해[形魂俱衍] 가는 것이다. 산을 다스려 길을 내는 것을 일러 개지開地라 하니, 땅을 개척하기 때문에 능히 때에 알맞은 일을 지어서 세상일이 변화할 수 있게 한다. 이러한 개척의 삶을 통해 지혜를 함께 닦게[智生雙修] 된다.[遣徃理世之謂開天이니 開天故로 能創造庶物이니 是虛之同軆也오 貪求人世之謂開人이니 開人故로 能循環人事니 是魂之俱衍也오
治山通路之謂開地니 開地故로 能開化時務니 是智之雙修也니라.]”
‘개천開天’이 말없는 삼신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한 성인의 대리 정치로 드러난 사건이라면, ‘개인開人’은 인간 자신의 본성에 대한 깨달음을 통해 자아 완성을 성취하는 길이며, ‘개지開地’는 불굴의 정신으로 개척의 삶을 살게 하는 힘의 원천을 뜻한다.
『천부경』의 3수에 근거한 ‘개천·개인·개지’의 논리는 『주역』이 천지인(☰)으로 괘의 구성을 설명하는 배경이 되었다.
한민족의 영웅, 치우천왕蚩尤天皇의 치적에도 ‘개천’의 전통이 어김없이 나타난다. ‘개천’은 하늘의 뜻에 의거하여 생명을 키워내는 일이며, ‘개토開土’는 땅 위의 인간 사회를 다스리는 일종의 통치 행위를, ‘개인開人’은 사람의 본성을 일깨워 ‘인간 사랑’의 실천을 북돋는 덕목을 가리킨다.
“우리 치우천황께서 배달 신시의 웅렬한 기상을 계승하여 백성과 함께 이를 새롭게 펼치실 때, 하늘의 뜻을 밝혀 생명의 의미를 알게 하시고, 땅을 개간하여 뭇 생명을 다스리게 하시고, 사람의 마음을 열어 생명을 존중하게 하시다.[我蚩尤天王이 承神市之餘烈하사 與民更張하사 能得開天知生하시며 開土理生하시며 開人崇生하시니]”
『환단고기』「삼성기三聖紀」에는 “오환건국吾桓建國이 최고最古라(우리 ‘환’의 나라 세움이 가장 오래 되었다)”는 깜짝 놀랄 만한 선언이 있다. ‘환桓’은 ‘밝을 환’ 자로서 ‘광명’이라는 뜻이다. 「삼성기」는 한민족의 뿌리이자 인류 창세의 나라인 환국의 역사를 밝히고 있다.
‘오환건국’의 진정한 의미는 삼신상제의 뜻을 세상에 펼치는 것에 있다. 이런 의미에서 『환단고기』는 『삼국유사』에서 전혀 찾을 수 없는 한국 상고사의 수수께끼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상고사의 진실은 고조선→배달→환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환웅은 환국의 건국 이념을 고스란히 계승하여 배달국을 열었다. 그 이념이 바로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이다. 그리고 삼신의 가르침으로써 세상을 다스리라는 것이 ‘재세이화在世理化’이다. 한마디로 환국 – 배달 이래, 한민족의 영혼을 지탱해 온 것이 바로 ‘개천’의 정신이라 할 수 있다.
이상 살핀 바와 같이, ‘환국 – 배달 – 단군왕검’으로 이어지는 개국의 이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하늘이 열리는 경계[開天]를 묻는 우주론의 합리성과 그 타당성을 입증할 수 있는 체계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개천’의 인류사적 의의를 한층 드높일 수 있는 방법은 ‘개천’에 대한 형이상학을 밝힌 『천부경』 81자 중에서 31자로 구성된 수의 구조를 분석하는 것이 가장 효과가 크다.
하늘의 열림, 즉 철학과 수학을 꿰뚫는 ‘개천’의 의미는 “하나의 시작은 무에서 비롯된 하나이다[一始無始一]”라는 명제에서 찾을 수 있다. 따라서 개천과 개국에 대한 문자 해석 또는 민족주의 역사관을 뛰어넘는 역사철학에 기초했을 때, 비로소 홍익인간의 이념은 물론 한민족의 정체성까지도 명료하게 드러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