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대회논문
김일부의 정역사상과 영가무도
양재학(상생문화연구소)
2022년 증산도 후천선문화 국제학술대회 발표논문
김일부의 정역사상과 영가무도
1. 들어가는 말
2. 정역사상이란 무엇인가?
1) 선후천의 전환을 선포하다
2) 시간의 혁명을 검증하다- 윤력에서 정력으로
3) 구원의 희망을 노래하다
3. 유교 문헌에 등장하는 영가무도
1) 『시경詩經?「모시서毛詩序」
2) 『논어論語?「태백泰伯」
3) 『예기禮記?「악기樂記」
4) 『소학小學?「소학제사小學題辭」
4. 김일부 영가무도의 특징
1) 『정역원의正易原義?「영가무도서詠歌舞蹈序」
2) 남학南學의 영가무도
3) 영가무도의 회고와 전망- 도덕의 실천 방법인가, 주문 수행의 심신수련법인가?
5. 나오는 말
1. 들어가는 말
조선조 말기, 충청도 연산連山 땅에서 태어난 일부一夫 김항金恒(1826-1898)은 후천개벽 사상의 최고 이론가로 알려져 있다. 젊어서는 가문의 영향 아래 문장 다듬기와 예학禮學에 힘썼으나, 연담蓮潭 이운규李雲圭(1804~?)를 만나고서부터 학문의 방향이 바뀌었다. 이때부터 줄곧 역학易學에 심취하였고, 나중에 붓대 하나로 전통의 사유를 뛰어 넘는 『정역正易?을 지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김일부는 35세에 이웃 마을[茅村]에 살던 이운규를 스승으로 모시고부터 『서경書經?과 『주역周易?을 깊이 탐독하였다. 김일부는 『주역?의 패러다임을 혁신하여 존재론과 생성론을 통합한 새로운 형이상학을 구축하였다. 그는 만물의 불변자와 각종 패턴을 음양오행설로 설명하는 도덕 형이상학 대신에 지금의 천지는 선천에서 후천으로 진화 중이라고 밝혀 시간의 속살을 해부하는 학설을 수립하였다.
특히 시간의 근거를 인간의 내면 의식에서 찾는 방법 대신에 자연의 시계에 뿌리를 두는 객관성 확보에 고뇌를 거듭하였다. 따라서 정역사상의 주요 주제는 새로운 세계관과 시간 형이상학으로 압축할 수 있다. 한마디로 우주변화의 원리라고 하겠다.
한편 김일부는 영가무도를 통해 한민족 고유의 심신수련법을 회복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수행론에 대해서 『정역?은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맑은 정신과 건강한 육체를 수련하는 영가무도의 교법을 스승에게서 전수받았다는 주장도 있으나, 연담 이운규가 직접 영가무도를 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김일부의 1세대 제자 청탄淸灘 김영곤金永坤(1863-1945)과 그의 제자인 박상화朴相和(1910~1994)는 김일부가 스승의 가르침을 깨우치면서 영가무도를 시작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충남 계룡시 엄사면 향한리에는 해발 574m의 향적산香積山 국사봉國師峰이 있다. 세상의 낡은 관념을 송두리째 뒤흔든 김일부가 국사봉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노년을 보내던 때의 일이다. 하루는 젊은 청년이 찾아 왔다. 그 청년은 백성들의 고달픈 삶의 현장을 직접 살펴보고, 천하유력을 끝낸 다음에 김일부를 만나러 국사봉을 방문했던 것이다.
“충청도 강경을 지나 連山에 이르러 香積山 國師峯에 있는 김일부를 찾으시니라. 지난밤 일부의 꿈에 하늘로부터 천사가 내려와 ‘玉京’에 올라오라는 명을 전하거늘 일부가 천사를 따라 올라가 ‘曜雲殿’이라는 편액이 걸린 장려한 금궐에 들어가 상제님을 뵙고 내려왔는데 이제 맞이한 증산을 뵈니 간밤에 뵌 상제님과 그 형모가 같은지라 그 일을 아뢴 뒤에 ‘曜雲’이란 도호를 드리며 심히 경대하되 증산께서는 그 호를 받지 않으시니라. 증산께서 그곳에 머무르시며 영가무도의 교법을 관찰하시고 일부와 후천개벽의 천지대세에 대해 말씀을 나누시니라.”
위 인용문에 나타난 바와 같이, ‘영가무도의 교법’이 김일부의 수행론이라면, ‘후천개벽의 천지 대세’는 선후천 전환의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역?에는 선후천 변화에 대한 치밀한 철학적 사유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 아주 많다.
김일부는 시의 형식에 의거하여 『정역?을 집필하였다. 그는 산수의 경치를 읊은 서정 시인이 아니라, 자연계의 숨겨진 질서[律呂]를 밝힌 철학적 시인이었다. 또한 그는 유학자로서는 보기 드물게 상수론象數論에서 말하는 자연계의 리듬에 맞추어 온몸으로 노래하고 수련한 점잖은 구도자였다. 흥에 겨워 막무가내로 몸을 흔든 것이 아니라, 춤사위 하나하나가 우주의 율동상에 꼭 들어맞는 영가무도詠歌舞蹈의 대가였던 것이다.
김일부는 스승과 헤어진 후, 인내 강변에 있는 용바위 근처 또는 할미바위 앞을 자주 노니며 풍월을 읊조렸다. 그곳에서 우주의 신비를 느끼며 천지와 더불어 혼연일체가 되어 영가무도를 즐겼다. 아침저녁은 물론 어떤 때는 하루종일 가무歌舞를 즐기다가 새벽녘에야 갓에 서리를 하얗게 싣고 도포자락이 찢어진 채로 돌아오곤 하였다. 집안 사람이나 동네사람들은 그가 물가에서 도깨비에 홀려서 미친 줄 알고 『옥추경玉樞經?을 읽은 일이 있다고 말할 정도로 영가무도에 심취하였다.
2. 정역사상이란 무엇인가?
1) 선후천의 전환을 선포하다
김일부는 『주역?의 권위에 짓눌렸던 낡은 옷을 벗어던지고 선후천 전환의 관점에서 새로운 우주관과 시간관을 수립하였다. 그는 인류가 꿈꾸었던 유토피아 세상이 오는 이치와 과정을 경건한 마음으로 성찰했으며, 때로는 난해하기 짝이 없는 고도의 수학 방정식을 고안하여 시간의 근본적 혁명을 담아냈다.
선천과 후천이란 말은 공자孔子(BCE 551-BCE 479)가 지었다는 『주역周易? 건괘乾卦 「문언전文言傳」에 가장 먼저 나온다. “하늘보다 앞서 가도 하늘이 어기지 않으며, 하늘보다 뒤로 해도 하늘의 시간을 받든다. 하늘이 또한 어기지 않는데 하물며 사람이며 귀신이랴![先天而天弗違, 後天而奉天時, 天且弗違, 而況於人乎, 況於鬼神乎.]” 그러나 공자 이후 1,500년 동안 선천과 후천에 대한 학술적 논의는 잠들었다가 송대宋代 철학자들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탐구되기 시작했다.
선후천관의 입장에서 역의 세계를 들여다본 인물은 소강절邵康節(1011-1077)이다. 그가 선후천관을 수립한 목적은 자신이 살던 시대가 복희와 요임금 시절을 제외한 최고의 태평성대라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입증하려는 의도 때문이었다. 그는 요임금을 중심으로 선천과 후천을 구분했다. “요임금의 앞은 선천이고, 요임금의 뒤는 후천이다. 후천은 (선천을) 본받아야 할 법칙이다. 하늘은 만물을 낳고, 성인은 만민을 낳는다.” 선천은 진리의 원형이므로 후천은 선천을 온몸으로 본받고 터득하여 이상적 인간이 되도록 노력하는 무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결론이다.
선천과 후천은 우주의 두 얼굴이다. 이때 선천과 후천이 맞물려 돌아간다는 것은 이원론(dualism)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지만 소강절이 말하는 선천이 후천의 근거라는 발상은 곧 요임금의 태평성대를 모범으로 삼아 과거로의 회귀를 꿈꾸는 역사관의 전형인 셈이다.
선후천론에 대한 혁명은 조선조 후기의 한반도에서 일어났다. 그것은 후천개벽사상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 김일부의 정역사상과 동학을 창도한 최수운崔水雲(1824-1864)에 이르러 꽃피기 시작했다. 겉으로 보면 김일부는 소강절의 선후천론을 이어받은 것처럼 보이지만, 선천과 후천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관점은 아주 다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여기(now and here)’라는 시간대를 놓고 볼 때, 소강절은 “지금 여기의 세상을 발생시킨 형이상의 세계가 선천이고, 현재 인류가 살고 있는 세상이 후천”이라는 주장을 견지한다. 그러나 김일부는 “지금 이곳의 세상이 선천이고, 머지않아 다가올 미래가 후천”이라는 사실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했다.
『정역?에는 조화옹께서 친히 조화의 일을 감독하여 보여주었다는 사실을 김일부가 고백한 내용이 있다. 그는 자신이 조화옹의 일을 대신 구술口述한 증언자였다는 의미의 제목을 지었던 것이다.
“아아! 금화가 올바르게 바뀌니 천지비는 가고 지천태가 오는구나.
아아! 기위가 친히 정사하니 무위는 존공되는구나.
아아! 축궁이 왕성한 기운을 얻으니 자궁은 자리에서 물러나는구나.
아아! 묘궁이 일을 맡으니 인궁이 자리를 사양하는구나.
아아! 5운이 운행하고 6기가 운동하여 10과 1이 일체되는 공덕이 무량하도다.”
嗚呼! 金火正易, 否往泰來.
嗚呼! 己位親政, 戊位尊空.
嗚呼! 丑宮得旺, 子宮退位.
嗚呼! 卯宮用事, 寅宮謝位.
嗚呼! 五運運六氣氣, 十一歸體, 功德无量.
후천에 새롭게 탄생하는 신천지는 6갑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그것은 시간성의 구조가 본질적으로 혁신되는 아주 중요한 사건이기 때문에 조화옹께서 직접 6갑의 메카니즘이 바뀌는 과정을 설명하는 수지도수까지도 직접 감독했다는 뜻이다. “화옹친시감화사化翁親視監化事”는 시간과 역법의 혁명을 얘기하는데, 그것이 과연 합당한가를 조화옹께서 친히 내려다보시고 확인했다는 것이다.
화옹은 세상을 조화시키는 생명의 어버이요, 도를 구현하는 최고신이다. 후천의 변혁은 모두 화옹의 감독 절차를 거친 뒤에 이루어진다. 화옹의 의지에 의거하여 선후천이 전환되므로 선후천 변화의 주체는 천지의 조화주라고 할 수 있다.
화옹께서는 무엇을 감독했는가? 첫째, 선천의 하늘과 땅이 소통하지 못하던 형국이 금화교역으로 인해 후천에는 자연과 문명과 인류의 마음에 이르기까지 만물이 형통하는 세상으로 바뀐다. 둘째, 천간의 질서가 바뀐다. 셋째, 지지의 질서가 바뀐다. 넷째, 1년의 세수가 바뀐다. 다섯째, 무극과 태극이 일체화되어 천지의 공덕이 새로워진다.
‘아아!’라는 감탄사가 다섯 번 등장한다. 5행 논리에 대한 깊은 신뢰가 개입된 것으로 보인다. ‘금화정역金火正易’의 주제는 ‘선천에서 후천으로’에 있다. 금화의 교체는 낙서와 하도의 도상에 나타나 있다. 낙서는 9수, 하도는 10수로 구성되었다. 낙서와 하도는 동방과 북방의 위치가 동일하지만, 서방과 남방이 서로 바뀌어 있다. 선후천 전환은 낙서 선천이 하도 후천으로 귀결되는 것에 있다. 여기서의 ‘정역正易’은 책 이름이 아니라, ‘금화가 올바르게 바뀐다’는 뜻이다.
『정역?의 사유에서 시간은 천지(우주)의 구조와 운행, 또는 생명의 진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러니까 『정역?의 시간관이 우주관의 토대가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시간의 구조와 탄생과 진화가 선후천 우주관 형성의 기초를 이루기 때문이다. 특히 “화옹친시감화사”의 내용 역시 시간의 구조 자체의 변화에 의해 천지의 구성이 바뀐다는 것을 얘기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아아! 금화가 올바르게 바뀌니 천지비는 가고 지천태가 온다.[嗚呼! 金火正易, 否往泰來.]”는 하도와 낙서의 4·9금과 2·7화가 교역함으로써 선천의 비색한 운수는 가고 후천의 태평한 운수가 곧 닥칠 것이라는 뜻이다. 이것을 『주역?이 괘도 측면에서 언급했다면, 『정역?은 하도낙서를 중심으로 논리 전개한 점이 다르다. 김일부는 선천의 천지비天地否(䷋) 세상은 이미 낡았고, 후천의 지천태地天泰(䷊) 세상이 온다는 것을 복희팔괘도와 정역팔괘도의 비교를 통해 설명하였다. 복희팔괘도는 남북이 ‘천지’의 형상이고, 정역팔괘도는 남북이 ‘지천’의 형상을 이룬다. 남북이 바뀐다는 것은 공간 질서의 전환을 의미한다. 그것은 인식의 패러다임 전환을 얘기한 것이 아니라, 생명과 시간의 구조 자체가 바뀐다는 존재 차원의 패러다임 전환을 언급한 것이다.
“아아! 기위가 친히 정사하니 무위는 존공되도다.[嗚呼, 己位親政, 戊位尊空.]”라는 말은 선천과 후천의 시간 질서가 바뀐다는 뜻이 담겨 있다. 선천이 후천으로 바뀌려면 지금까지의 세상을 지배했던 6갑 시스템이 바뀌는 것이 당연하다. 선천에는 갑甲에서 시작하여 을, 병, 정, 무, 기, 경, 신, 임, 계의 순서로 움직인다. 하지만 후천은 기己에서 시작하여 경, 신, 임, 계, 갑, 을, 병, 정, 무의 순서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천간과 지지는 각각 하늘과 땅이요, 시간과 공간을 지시한다. 천간 ‘갑’은 하늘이요 양이요 남자요, 사회적으로는 군자를 상징한다. 반면에 지지 ‘자’는 땅이요 음이요 여자요, 사회적으로는 소인을 상징한다. 선천이 하늘과 양과 남자와 군자를 떠받드는 세상이었다면, 후천은 땅과 음과 여자를 떠받드는 세상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본체와 작용의 전환에 의해 천지가 지천으로 바뀌어 시공時空 질서가 전환되는 사태를 의미한다. 천간 즉 시간 질서의 변화는 지지 즉 공간 질서의 전환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아아! 축궁이 왕성한 기운을 얻으니 자궁은 자리에서 물러난다.[嗚呼! 丑宮得旺, 子宮退位.]” 선천에 생명을 낳던 집인 ‘자’는 더 이상 불임 공간으로 전락되었기 때문에 후천에는 새로운 시공의 창고가 필요하다. 모든 형이상학이 우주론을 중시여기지만, 『정역?은 오히려 시간론이 우주론에 선행하는 특징을 갖는다. 따라서 시간의 구조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에 따라 공간을 비롯하여 역사와 문명의 틀까지 변형되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시간 질서의 전환은 공간 질서의 전환을 동반하기 때문에 천간의 변화에 이어 지지의 변화를 얘기하는 것이다.
선천이 ‘자’에서 출발한 천정天政이라면, 후천은 ‘축’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지정地政을 뜻한다. 천간 기己도 10, 지지 축丑도 10이다. 후천은 하도 10수의 세상이라는 뜻이다.
“아아! 묘궁이 일을 맡으니 인궁이 자리를 사양한다.[嗚呼! 卯宮用事, 寅宮謝位.]” 이 대목에서 천간과 지지의 구성 자체에 일어나는 변화는 역법 구성의 메카니즘에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현재는 전통의 인월세수寅月歲首의 역법을 따르고 있다. 동양의 역법은 인월세수를 썼던 하夏나라로 거슬러 올라가며, 은殷나라는 축월세수丑月歲首를, 주周나라는 자월세수子月歲首를 썼다. 지금은 공자가 하나라 역법을 본받았다는 전통에 의거하여 인월세수를 쓰고 있다.
선천은 새해 첫 달이 인월寅月였던 것이 후천에는 묘월卯月로 세수가 바뀐다. 선천의 정월이 인월寅月였다면, 머지않아 후천에는 묘월卯月을 정월로 삼는다는 것이다. 묘월이 새해 첫 달이 되기 위한 전제 조건은 천간지지의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결국 선후천 교체는 역법의 재편성으로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2) 시간의 혁명을 검증하다- 윤력에서 정력으로
인간은 흘러가는 시간의 강물을 과거, 현재, 미래로 구분하여 변화를 깨닫는다. 하지만 시간은 실체가 없기 때문에 아무런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시간의 흐름은 천체의 물리적 순환운동과 함께 일정한 방향성을 갖고 앞으로 나아간다. “金一夫는 내 세상이 오는 이치를 밝혔으며, … 일부가 내 일 하나는 하였다”는 말처럼, 김일부는 선천과 후천으로 구성된 거대한 캘린더 속에 숨겨진 시간의 법칙을 풀어내었다.
세상의 모든 캘린더는 달이 찼다가 이지러지는 주기 혹은 계절의 규칙적 교대와 태양의 운행에 의해 이루어지는 밤과 낮을 토대로 삼았다. 그러므로 자연의 시간표는 인간의 생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동양 최초의 체계적인 역법은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성립한 사분력四分曆이다. 그 명칭은 1년의 날수에 365¼일을 채택한 것에서 유래하였다. 거기에 윤달을 끼어 넣는 치윤법置閏法이 사용되었다. 19년 동안 7번 윤달을 삽입하는 이른바 ‘메톤(meton) 주기법[19歲 7閏法]’이 등장하였다. 이것에 의해 캘린더[冊曆: 달력]와 계절의 어긋남을 조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캘린더의 형성 법칙인 역법曆法과 캘린더 구성의 근거인 역리曆理를 분명하게 구분해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김일부는 캘린더 구성의 메카니즘에 대해 본질적 물음을 던지고 해답을 제시했다. 캘린더의 두 얼굴인 정력正曆과 윤력閏曆의 구분이 그것이다. 그는 왜 음력과 양력의 차이가 생기는가(음양의 불균형)라는 시간의 밑바닥까지 훑어서 그 수수께끼를 파헤쳤다.
현실적으로 지구에 4계절이 생기는 까닭은 지축경사 때문이다. 지축이 기울어진 채로 지구가 태양을 안고 공전하는 궤도는 타원형이다. 지구의 공전주기는 365¼일이다. 반면에 달이 지구를 한 바퀴 도는 시간은 대략 29.5일로서 12번 반복하면 29.5 × 12 = 354일이 걸린다. 360일을 기준으로 태양력 365¼일과 태음력 354일을 비교하면 대략 전자는 플러스 6일, 후자는 마이너스 6일쯤 된다. 태양력과 태음력의 불일치로 말미암아 생기는 생활의 불편 때문에 세계의 모든 문화권에서는 태양력과 태음력을 혼용해 사용했던 것이다.
김일부는 우주사가 캘린더 구성근거 자체의 변화에 의거한다고 전제하였다. 그는 우주변화의 한 싸이클을 4개의 시간대로 구분하여 시간성의 내부 구조를 밝히고, 후천에는 1년 360일의 도수가 정립됨은 논증했던 것이다. 즉 원력原曆(김일부가 밝힌 375도) → 윤력閏曆(요임금이 밝힌 1년 366일) → 윤력閏曆(순임금이 밝힌 1년 365¼일) → 정력正曆(공자가 밝힌 1년 360일)로 전개된다. 원력 375도는 우주의 4계절이 첫 출발하는 시공변화의 기점이며, 선천 시간개벽의 근원이 된다. 한마디로 천지일월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동력원에 시간의 꼬리(6일 또는 5¼일)가 붙고 떨어지는 과정으로 전개된 것이 곧 캘린더의 역사라는 것이다.
우주 시공의 | 원력原曆 | 선천 윤력閏曆 | 정력正曆 | |
변화의 모체 | 생력生曆 | 장력長曆 | 성력成曆 | |
발견자 | 김일부一夫 | 당요唐堯 | 우순虞舜 | 공자孔子 |
변화 도수 | 375도 | 366도 | 365¼도 | 360도 |
윤도수 | (15도) 15일×12시 = 180 = 99+81 | (6도) 6일×12시 = 72 | (5¼도) 5×12+¼×12 = 63 | (0도) |
우주 창조의 삼력 변화 원리
김일부는 『정역?을 저술하여 새로운 달력을 선포했다. 그것은 천지가 새로운 시간질서로 전환한다는 것을 밝힌 이론이다. 문자적으로 ‘정역’은 올바른 변화를 뜻한다. 정역이란 천지가 창조적 변화를 통해 올바르게 바뀌어 새로운 세상이 온다는 것이다. 김일부는 「대역서大易序」에서 『정역?은 달력, 즉 시간의 문제라고 선언한다.
“역이란 책력을 뜻한다. 책력이 없으면 성인도 없고, 성인이 없으면 역도 없다.”
이 말은 『주역?이 시간의 꼬리가 붙은 윤력閏曆을 말했다면, 『정역?은 시간의 꼬리가 떨어진 무윤력無閏曆(= 正曆)이라는 뜻이다. 정역 연구자 이정호는 “정역은 한마디로 후천역後天易이며, 미래역未來易이며, 제3역第三易”이라고 말했다. 『주역?은 과거역이고 『정역?은 미래역이다. 김일부가 말하는 역曆은 캘린더 구성 근거를 의미하기 때문에 과거의 주역은 물러나고 미래의 정역으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지나온 세상이 선천이며, 앞으로 다가오는 세상은 후천이다. 따라서 후천의 새로운 역曆의 원리, 곧 새로운 시간질서의 변화를 들여다본 것이 정역사상이라 할 수 있다.
정력은 미래의 후천에 사용될 캘린더다. 이는 윤력에서 정력으로의 전환을 통해 새로운 시간질서가 정립되는 초역사적인 사건을 뜻한다. 결국 새로운 시간의 차원에서 천지질서와 문명질서를 비롯하여 인간 삶의 모든 것을 새롭게 점검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제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윤력에서 정력으로의 전환은 시공질서의 재조정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천체의 궤도가 수정되어 일어나는 지축정립으로 현실화되는 것이다. 정력 360일 세상은 음양이 조화된 정원궤도를 형성한다. 하지만 선천의 봄과 여름의 윤력(366일의 생生, 365¼일의 장長) 세상은 음양의 균형과 조화가 깨져 타원궤도로 운행한다. 지구의 타원궤도는 자전축이 23.5도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생기며, 이것은 천체의 정립과 경사의 반복운동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3) 구원의 희망을 노래하다
우주관의 입장에서 보면 선천은 음양이 불균형한 억음존양抑陰尊陽으로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이며, 후천은 금화교역을 거쳐 정음정양正陰正陽의 세계가 이루어지는 조화造化 세상을 뜻한다.
김일부의 선후천론은 우주사宇宙史와 시간사時間史를 관통한다. 전자는 복희괘伏犧卦 → 문왕괘文王卦 → 정역괘正易卦로의 세 단계의 과정을 거쳐 우주가 완성되며, 후자는 원력原曆 → 윤력閏曆 → 정력正曆으로의 세 단계의 전환을 통해 1년 360일의 시간질서가 완결되는 것을 의미한다.
복희팔괘도
문왕팔괘도 정역팔괘도
그 핵심은 ‘간방에서 끝맺고 다시 간방에서 시작한다[終於艮始於艮]’는 말로 정리할 수 있다. 이는 복희팔괘도의 건괘乾卦로부터 출발한 선천이 문왕팔괘도의 간괘艮卦에서 끝맺고, 곧이어 정역팔괘도의 간괘에서 새로운 천지가 열려 만물이 재창조되는 것을 뜻한다. 왜냐하면 선천의 동북방이 후천의 동방으로 바뀜은 지축정립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공자는 인류의 궁극적인 구원 문제를 『주역?「설괘전」에서 결론지었다. 그는 유가의 이상인 대동사회가 간방에서 이루어지는 천도의 이법을 다음과 말했다.
“간은 동북방을 가리키는 괘이다. 만물의 끝매듭을 이루는 것이요, 새로운 시작을 이루는 까닭에 ‘간방에서 하늘(하느님)의 말씀[言=logos]이 완수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만물을 끝맺고 다시 시작하는 것은 간괘의 이치보다 성대한 것이 없다. … 능동적으로 변화하여 이미 만물을 이룬다.”
‘간’은 문왕괘에서는 동북방, 정역괘에서는 동방이다. 간방은 만물의 변화가 매듭지어지고 새로운 시작이 이룩되는 신성한 공간이다. 그것은 하늘(하느님의 섭리 또는 상제의 조화권능)의 ‘말씀’이 간방에서 완성된다는 뜻이다. 『주역?의 이론에 따르면, 조선은 지구의 동북방에 해당하는 간방艮方이다. ‘간’은 시작과 결실을 의미하는 생명의 열매를 상징한다. 열매는 ‘초목의 열매’, ‘인간의 성숙’, ‘문명의 완성’을 포괄한다. 지정학상으로 볼 때, 한반도는 기존의 역사와 문명을 마감하고 새 시대와 새 문명을 여는 지구의 중심이다.
김일부는 정역팔괘도正易八卦圖를 그어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이론을 정립했다. 정역팔괘도는 복희팔괘도伏羲八卦圖와 문왕팔괘도文王八卦圖가 표상하는 세계를 넘어선 제3의 미래역이다. 미래역은 과거와 현재에는 쓸모없고 미래에만 통용된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앞으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관통하는 보편타당한 원리를 뜻한다.
3. 유교 문헌에 등장하는 영가무도
최근에 영가무도가 한국 신교에서 비롯되었다는 연구들이 주목받고 있다. 신교와 관련된 문헌으로는 크게 경전류와 사서류와 전기류가 있다. 경전류는 신교 문화의 3대 경전인 『천부경天符經?·『삼일신고三一神誥?·『참전계경參佺戒經?을 말하며, 사서류는 『부도지符都誌?·『환단고기桓檀古記?·『규원사화揆園史話? 등 신교의 역사관을 저술한 문헌이며, 전기류인 『청학집靑鶴集?·『해동이적海東異蹟?『오계일지집梧溪日誌集? 등은 신교의 전통 맥을 기록한 문헌을 가리킨다.
한국 고유의 원형 정신을 밝힌 『환단고기?를 이어받은 사료를 언급할 때, 빠질 수 없는 자료는 바로 최치원崔致遠(857-?)의 「난랑비서문鸞郞碑序文」이다. 최치원은 ‘우리나라에 현도한 도가 있다[國有玄妙之道]’의 핵심을 풍류風流라고 말하여 원래부터 민족 고유의 문화가 존재한다고 했다.
신라의 원광법사圓光法師(542-640)는 화랑들이 지켜야 할 규범인 세속오계世俗五戒를 제시했다. 화랑도의 가르침이 선도요, 선도를 기록한 역사가 『선사仙史?란 사실은 선도 문화의 실재를 증언한 것이다. 화랑이 산천을 돌아다니며 음악으로 정신을 수양했다는 전통이 곧 영가무도의 정신을 계승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한국 문화의 원형은 『환단고기?에서 말하는 삼신께 제사를 올리면서 천악天樂과 천무天舞를 하고, 『천부경?을 외우며 천지 본음을 찾으려고 했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고대 사회에서 삶의 중요한 원천이었던 제천의식에서 하늘과 신에 대한 기원으로 춤추고 노래하던 것이 점차 놀이와 축제의 성격을 띠며 악樂·가歌·무舞로 자리 잡았던 것이다.
영가무도는 동북아 상고 시대를 꽃피운 문화로 성장했으나, 불교국가였던 고려 이후에 영가무도가 거의 인멸되었고, 조선말 김일부에 의해 재현되었다. 영가무도는 김일부의 제자인 십청十淸 이상룡李象龍(1850-1899)의 저술에서 처음으로 언급되었으며, 윷판을 중심으로 정역사상을 이해하고 영가무도를 삶의 전부로 살았던 청탄淸灘 김영곤金永坤(1863-1945)이 있다.
그러면 유교의 문헌에 나타난 영가무도의 자료를 살펴본 다음에, 그것이 과연 김일부의 영가무도와 일치하는가를 검토하는 절차를 밟는다.
1) 『시경詩經?「모시서毛詩序」
“시라는 것은 뜻이 나타내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마음 속에 있을 때는 뜻이라 하고, 말로 표현하면 시가 된다. 감정이 마음 속에서 움직이면 말로 나타나는데, 말로 부족하기 때문에 한탄하고 탄식하게 된다. 한탄과 탄식으로도 부족하기 때문에 길게 노래[永歌]한다. 영가로도 부족하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손으로 춤추고, 발로 뛰며 춤추는 것이다. 감정은 소리에서 발생하는데, 소리가 선율을 얻은 것을 음이라 한다.”
시 읊는 감정을 흥겹게 표현하는 문화에서 비롯된 영가무도는 진리를 체험하는 정신과 육체의 수련, 즉 심신통일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영가무도는 ‘뜻 → 말, 시 → 탄식과 감탄 → 길게 읊고 노래함 → 손으로 춤을 추다 → 발로 뜀’의 단계를 거쳐 점차 진행되는 것을 의미한다.
2) 『논어論語?「태백泰伯」
공자는 학문이란 “시에서 시작하여 예에서 일어나고 악에서 이룬다”고 했다. 이에 대해 정이천程伊川(1033-1107)은 다음과 같이 주석을 달았다.
“옛사람들의 악은 성음으로써 귀를 기르고, 채색으로써 눈을 기르고, 가영으로써 성정을 기르고, 무도로써 그 혈맥을 길렀다. 오늘날에는 모두 없어졌기 때문에 악에서 이룰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옛날에는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쉬웠으나, 오늘날에는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이 글을 통해 『시경?과 『논어?와 『예기? 등의 고전을 읽던 선비들이 수련한 영가무도는 이미 정이천이 살던 시대에는 인멸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가무도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궁·상·각·치·우와 음·아·어·이·우의 발성법이 부합하는 것이다. 정이천에 의하면, 영가는 말을 길게 늘이거나 노래하는 것이며, 다시 무도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3) 『예기禮記?「악기樂記」
“노래는 음조가 위로 올라갈 때는 하늘로 오르듯이 가볍고, 음조가 내려갈 때는 땅으로 떨어지듯이 무겁고, 음조가 굴곡을 이룰 때는 꺾이듯이 느리고, 그치기를 고목같이 하라. 그리하여 가는 곡조에서도 규칙이 있게 하고, 음조를 멈출 때는 마른 나무가 서 있듯이 고요하며, 음조가 작게 굴절할 때는 곡자처럼 급하고, 크게 굴절할 때는 완만하며, 연달아 부르기를 마치 구슬을 꿰매는 것처럼 단정히 하라. 그러므로 노래한다[歌]는 것은 길게 말하는 것[長言]이다. 기쁘기 때문에 길게 말하는 것이다. 길게 말하는 것이 부족하기 때문에 감탄사로 표현하고, 감탄사만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손으로 춤을 추고, 발로 뛰며 춤을 추는 것이다.”
「악기」와 「모시서」의 내용은 거의 일맥상통한다. 후자가 뜻[志] → 시 또는 말[言] → 탄식[嗟歎] → 영가 → 손으로 춤을 추다[手舞]·발로 뜀[足蹈]의 다섯 단계를 말했다면, 전자 역시 설說·언言 → 길게 말함[長言] → 한탄과 감탄[嗟歎] → 손으로 춤을 추다[手舞] → 발로 뜀[足蹈]의 다섯 단계를 말했다.
특히 「악기」의 다섯 단계는 현재 한국에서 발굴 전승되는 있는 ‘영詠 → 가歌 → 무舞 → 도蹈’의 과정과 거의 흡사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4) 『소학小學?「소학제사小學題辭」
유교는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지향한다. 유교의 형이상학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행동 규범을 실천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은 옳다. 『대학大學?은 알기 쉬운 반면에, 오히려 어린아이가 배우는 『소학小學?의 덕목은 실천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소학의 가르침은 물 뿌려 소제하고, 남의 말에 응대함이 예절에 부합하며, (집에) 들어와서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가서는 어른에게 공손하여 행동이 혹시라도 어긋남이 없게 하는 데 있다. 이런 일을 실천하고 여력이 있을 때에는 시를 외우고 글을 읽으며, 노래하고 춤추며 정서를 도야하여 생각이 혹시라도 도리에서 벗어남이 없게 하라.”
예전에 글공부하는 선비들은 처음부터 영가무도를 배웠다는 얘기다. ‘시를 외우고 글 읽는 단계’ 다음에는 영가무도를 통해 공부의 성취도를 드높였다는 뜻이다.
주자는 영가무도의 목적은 정신과 육체의 단련을 통해 배움을 극대화 할 수 있다고 했다. 영가는 음악의 소리를 익히는 영역이며, 무도는 음악을 담는 몸가짐을 수련하는 덕목이라 인식한 것이다. 영가는 단순히 외우고 읽는 수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리듬과 박자로 길게 노래하는 발성법을 뜻한다.
4. 김일부 영가무도의 특징
1) 『정역원의正易原義?「영가무도서詠歌舞蹈序」
이 글의 지은이 이상룡(1850-1899)은 김일부 생전에 선후천 전환에 입각한 『정역원의?를 저술하였다. 그는 젊어서부터 역학에 심취했으나, 스승을 만난 다음에 크게 깨달음을 얻어 정역계의 뛰어난 학자로 발돋움했다.
이상룡은 영가무도의 유래에 대해 각종 문헌을 인용하면서 유학자의 입장에서 잠든 몸과 마음을 일깨우는 「영가무도서」를 썼다. 그러나 음·아·어·이·우의 소리 수행에 대해서는 언급을 생략했고, 건강한 심신수련법을 통해 도덕성의 함양이 심화되어 인재 양성에 매우 효과가 크다는 내용만을 중시여겼던 것이다.
“대저 역은 사람을 교화시키는 음악 악보이다. 포희씨가 처음으로 괘를 그어 만물의 형상을 드리웠다. 음악과 노래의 근원에 대해서 축융이 살폈고, 무도의 이치는 음강이 연마했다. 춤을 만들어 뛰면 몸은 부드러워지고 기운이 조화되며, 음악을 지어 노래부르면 신과 잘 어울리고 다른 사람들과 화합이 이루어진다. 성정을 기르고 혈맥을 기르면 천지와 더불어 그 위대함이 동일해져 인재를 육성할 수 있기 때문에 『서경書經?「우서虞書」“순전舜典”의 기夔에게 전악 벼슬을 내리는 구절에 주석을 달면서 “태자와 경대부의 맏아들의 가르침”을 궁상각치우를 영가로 삼았다. 『주례?「춘관」에서 성균법을 관장한 대사악은 “국가의 자제들을 가르치는데, 5음 6율로 영가무도로 삼았다”고 했으며, 『파경? “관저”장에 대해 유씨는 “영가로 인심을 기르고, 무도로 혈맥을 기른다”고 주석을 달았다. 주자는 이를 통틀어 풀이하기를 “이때 인심을 비롯해 장부와 폐와 쓸개가 일시에 변하고 모르는 사이에 영가로 형상화되었다.” 노나라 『노론? 「태백」에 “시로써 흥을 일으키고, 예로서 서며, 음악으로써 이룬다”고 했는데, 수많은 각주들은 궁·상·각·치·우를 영가무도로 삼아 높고 낮음과 맑고 탁한 소리와 뜻을 모두 갖출 수 있었다. 또한 주자는 “무도를 하면 뛰어난 재주를 가진 이는 성현이 되고, 낮은 재주를 가진 이도 훌륭한 선비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대개 복희, 축융, 요, 순, 문왕, 무왕, 주공, 공자가 사람을 교화시키는 힘은 음악과 노래로 베풀고 춤과 뜀뛰기로 가르쳐 마음의 찌꺼기를 찾아 녹여버리고, 간사하고 더러운 것은 씻어내어 성정을 올바르게 하고 기혈을 조화롭게 하면 모든 이치가 뚫리어 6예가 갖추어져 인재가 빛날 것이다. 성신을 흥성케하고 악기 제작법을 계승하여 노래 소리가 천하에 널리 퍼지게 한다. 무위의 다스림과 신을 모시는 교화를 나와 만물 사이에 틈이 없도록 사무치게 하면 천지와 더불어 조화를 같이 할 수 있고, 5음의 소리가 군신과 만물이 덕 있고 장수를 누리는 지역에 널리 퍼져 깊고도 오랜 전통이 극도로 번성할 것이로다.
무릇 악기는 노래와 읊음과 무도는 순임금 교화술의 근원였는데, 이에 대해 주자는 소학제서를 지어 밝히고, 그 법도를 상세히 말했다. 요씨는 “지금은 다시 알 수 없는 것이 매우 통탄스럽다”고 주석을 달았다. 정이천은 “천하의 수많은 인재는 단지 도에 뜻을 두었으나 천하에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성취한 바가 없다. 또한 ‘옛날에 시로써 흥을 일으키고, 예로서 서며, 음악으로써 이룬다’고 했는데, 오늘의 누가 이해했겠는가? 비록 늙은 선비와 성숙한 유학자일지라도 그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 또한 “옛사람들은 영가로써 성정을 기르고, 음향과 소리로써 눈과 귀를 기르고, 무모로써 혈맥을 길렀다”고 말했다. 이제 모두 인멸되었으나, 예전에 인재를 이루는 것은 쉬웠고 지금은 인재를 이루는 것이 어렵다. 아아! 정이천과 주자 이상은 임금과 스승이 천하보다 앞섰으므로 인격을 만드는 교화와 사람 만드는 실천의 가르침이 있었다. 정이천과 주자 이하는 힘들고 궁핍한 군자였으므로 인격의 규칙은 있었으나 사람을 만드는 실질적 위치는 없었다. 그 방법을 붓으로 썼으나, 언어와 문자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시의 간결함을 지키고, 악곡의 규칙과 간결성이 우리 동방의 옛 일을 기록한 서적에 실려 있다. 『악기?의 오램[古], 팔일八佾의 수, 도상을 짓는 무无, 움집에서 근심하면서 저술하는 손, 9성·2일·6성의 3척을 계승하여 지어 활짝 밝게 열었다. 위대하도다. 우리 동방의 선철들이 인격 교화의 공덕을 잊지 못하여 지극히 지난 성현을 계승하여 미래를 펼친 것이라 할 수 있다. 존경스런 어떤 이는[己夫] 12율을 바탕으로 춤추는 사람의 행열 위치에서 12율 중의 황종으로 엮었다. 63, 72, 81의 정음으로 성정을 기르고 인재를 양성하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생각하는 사람은 오직 정역에 능통한 군자만이 가능할 것이리라.”
夫易, 作人之樂譜也. 包羲氏始劃而垂象, 樂歌之原, 祝融索之, 舞蹈之理, 陰康硏之, 制舞而蹈之, 軆柔而氣和, 作樂而歌之, 神諧而人和. 養性情而養血脈, 與天地同其大而作育人才, 故虞書之命夔典樂章註曰 敎冑子卿大夫之適子, 以宮商角徵羽爲詠歌. 周禮大司樂掌成均之法曰 敎國子弟以五音被六律爲詠歌舞蹈. 葩經之關雎章, 劉氏註曰 詠歌養人心, 舞蹈養血脈. 朱子統以釋之曰 時人心腸肺膽一時幻了, 不覺形於詠歌. 魯論泰伯篇曰 興於詩 立於禮 成於樂. 大小註脚節節, 以宮商角徵羽爲詠歌舞蹈, 高低淸濁之音義悉具. 又朱子曰 舞蹈則高才爲聖賢, 下才爲吉士. 盖羲融勛華文武周孔之作人之化, 宣之以樂歌, 敎之以舞蹈, 鎖融査滓蕩滌邪穢, 性情正而炁血和, 萬理豁而六藝備人才彬. 興聖神繼作絃, 歌之聲達于上下而洋洋, 无爲之治 存神之化 浹乎物我而无間, 與天地同其和, 而五音之君臣事物躋之於仁壽之域, 而无疆邃古之盛於斯極矣.
夫樂記歌詠蹈, 舜之源本, 朱子作小學書擧以明之, 詳其規矩. 饒氏註之曰 今不復見, 可勝歎哉. 程子曰 天下多少才只爲道不明於天下, 故不得有所成就, 且古之興於詩 立於禮 成於樂. 今人怎生會得, 雖老士熟儒不能曉其義. 又曰 古人有詠歌以養性情, 聲音以養其耳目, 舞蹈以養其血脈. 今皆无之, 所以古之成才也易, 今之成才也難. 噫! 程朱以上, 上以爲君師於天下, 故有作人之化而行作人之敎. 程朱以下, 下以爲固窮之君子, 故有作人之規而无作人之位, 筆之方冊而不越乎言語文字, 故衛詩之簡兮, 章之規畧載於我東攷事書樂記之古, 佾舞之數 撰圖於无慽窩之手而纘綴, 九成二佾六成之三尺, 開卷瞭然. 大哉! 我東先哲之眷眷於作人之功, 可謂克繼前聖而開來也. 已夫綴兆之十二成黃鐘絲之, 六十三七十二八十一之正音養性情, 育人才而爲己任者. 唯正易之君子能之矣.
2) 남학南學의 영가무도
남학의 이상은 후천세계 무량낙원無量樂園의 개벽이다. 후천무량낙원에의 참여는 후천개벽의 역리易理를 인식하고 오음의 주송수련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한다. 오음은 음吟·아哦·어唹·이咿·우吁을 말한다. 오음이 궁宮·상商·각角·치徵·우羽의 5성聲과 토土·금金·목木·화火·수水의 5행行 및 비脾·폐肺·간肝·심心·신腎의 5장五臟을 조화롭게 다스리는 음율이기 때문에 이를 주송하면 자연히 5장이 수련되는 원리를 밝힌 것이다. 그리고 오음주송은 음율의 고저高低, 청탁淸濁이 조화롭게 자연의 교리에 응하기 때문에 이를 ‘영가’하면 손발이 저절로 움직여 무도가 된다. 영가무도가 극치에 이르면 앉은 채로 몸이 3, 4척을 뛰어 오르고 심신의 질병이 치유된다고 믿는다. 이것을 자연의 조화에 부응하는 경지라고 부른다.
이런 의미에서 영가가 몸을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서 읊고 노래하는 정공靜功이라면, 무도는 몸을 힘차게 움직이면서 수련하는 동공動功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영가무도가 남학南學에 전파된 주문 수련과 동일하다는 주장이 있다. 남학의 ‘음吟·아哦·어唹·이咿·우吁’ 주문은 동학의 그것보다 훨씬 쉽고 간단하다. 동학의 주문이 종교적 경건성에 바탕한 주문이라면, 남학의 주문은 5행의 리듬에 부합하므로 대중성의 확보가 가능했다는 주장은 남학의 영가무도와 김일부의 영가무도가 똑같았다는 전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남학이 심신통일이라는 영가무도의 숭고한 목적을 배제한 채 주로 종교의 대중화 방법으로 이용한 것은 신비주의로 치달아 사회적 폐단을 낳는 원인이 되었다. 이강오는 전라도 진안에서 흥성한 남학의 수련법과 충청도 연산 지방에서 김일부와 그의 제자들이 수련한 영가무도의 차이점을 다음과 같이 구분하였다. 남학의 교리가 유불선 3교의 합일에 기초했으나, 김일부는 유교를 중심으로 불교와 선교를 융섭하였다. 반면에 김광화金光華(1855-1894) 계열에서는 불교를 중심으로 선교와 유교를 융섭하였다. 이들 모두가 유교도 아니고, 불교도 아니며, 선교도 아닌 독특한 혼합된 교리를 만들었던 것이다. 5음을 외우는 것은 일종의 영가이면서 자연의 이치에 부합하고, 인간의 정서 순화에 부합하여 신비한 주술적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5음의 영가에 김광화 계와 김일부 계가 다른 점이 있다. 김일부 계에서는 5음 이외에 다른 주도呪蹈하는 교파도 있으나, 대개는 5음 영가를 수련의 기본법으로 삼았다. 그런데 김광화 계에서는 5음 영가보다는 염불念佛, 진언眞言, 칠성주七星呪 등 각종 주문과 각종 기도문祈禱文과 경문經文 등이 많다. 그것은 김광화가 수련보다는 기축祈祝에 치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학에서 유행한 영가무도의 폐단은 정치적 탄압을 받는 빌미를 제공했다. 황현黃玹(1855-1910)은 남학의 수행 방법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전라감사 李道宰가 도내를 순시하다가 진안현에 이르러 佛學의 간사한 무리 10여 명을 체포하여 전주로 이송하여 가두어두었다가 목을 베었다. 불학은 남학이라고도 하는데 몇 년 전에 처음 생겼으나 그 주창자가 누군지 알 수 없었다. 동학과 함께 일어났으나 배움이 달랐다. 그러나 그 법회를 할 때 미친 듯이 노래를 부르고 어지럽게 춤을 추며 껑충껑충 뛰면서 주문을 외우는 것[狂歌亂舞, 跳躍誦呪]은 서로 다르지 않았다. 그 노래는 ‘남쪽 문을 열고 바라를 두드리면 닭이 울고 산천이 달처럼 밝아오리라’고 했는데, 노래가 끝날 무렵에는 큰소리로 나무아미타불을 불렀다. 노래는 대개 합창을 하는데 가락에 맞추어 사방으로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들은 이것을 노래하고 춤추면서 배운다고 하였다. … 동학에서 빠져나온 자들이 점점 남학으로 몰려들었다.”
황현의 기록을 자세히 읽어 보면, 전라도 지역에서 흥성했던 남학의 영가무도와 충청도 연산 지역을 중심으로 널리 퍼졌던 김일부의 영가무도가 동일하다는 증거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남학의 영가무도는 전라도 지방에서 유행한 수련법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연담과 남학의 관련성은 확실하나, 김일부가 남학에 참여했다는 어떤 기록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당시에 동학과 어깨를 겨뤘던 남학의 영가무도가 주문수련이라는 외향적 방법을 중요하게 여겼다면, 김일부의 영가무도는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도덕적 주체성의 자각을 통하여 하늘의 뜻과 일치하려는 목적에서 노래와 춤에 집중했던 까닭에 이 둘의 방법은 전혀 달랐다고 할 수 있다.
결국 황현은 김일부의 영가무도가 아닌 남학 수련법의 폐단을 지적하고 있는 셈이다. 남학의 수련은 영가무도의 근본정신이 인격의 완수에 있음을 망각하고, 자아를 상실한 채 황홀경에 빠지는 왜곡된 형태의 영가무도였던 것이다. 그러나 김일부가 인내 강변에서 풀 한 포기 남지 않을 정도로 영가무도를 수련했다는 것을 보면, 그의 정역사상은 영가무도의 체험을 통해 더욱 심화된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이밖에도 영가무도는 신바람[神風] 문화와 무관하지 않다. 신바람은 ‘맺힘’과 ‘풀림’이라는 한국인의 정서를 대변한다. ‘고, 응어리, 어혈, 멍’ 등의 맺힘에 대한 감정의 표출은 ‘맺히고, 막히고, 엉키고, 꼬이는’ 강박 관념과 한탄, 실망, 애환과 유감, 실의와 억울함과 좌절과 욕구 불만의 상처를 유발하는 수동적 ‘한恨’ 문화를 형성했다. 가슴에 맺힌 한을 해원시키기 위해 한민족은 풀리고, 뚫고, 달래고 매만지는 신명의 마당인 ‘굿’의 문화를 창출해냈다. 체념과 위안을 곁들이면서 저항하고 극복하려는 의지의 산물이 바로 굿풀이였던 것이다.
신명풀이로서의 춤사위와 노래는 영성을 뒷받침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영가詠歌를 영가靈歌로, 무도舞蹈를 무도舞道로 바꾸어 표현하는 학자도 있다. 그것은 영가詠歌를 일종의 주문呪文(Mantra)으로 규정한 것이다. 또한 영가무도는 긴 숨을 들이쉬면서(호흡 조절) 영성에 가까운 소리를 내고 춤추어 천지 기운을 하나로 통일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한마디로 영가무도는 천지와 하나되는 ‘소리춤’인 것이다.
3) 영가무도의 회고와 전망
- 도덕의 실천 방법인가, 주문 수행의 심신수련법인가?
1940년, 김석구는 조선일보에 “평조, 계면조 이야기(1)”라는 글을 썼다. 『악서樂書?에서 설명한 5음의 구체적인 소리가 유가의 선비들이 수련했다는 영가무도에서 이용되는 ‘음·어·아·이·오’ 다섯 가지 소리라고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유가에서 선비들이 영가무도를 했습니다. ‘음·어·아·이·오’ 이 다섯 가지 소리를 전문으로 독공하여 읊고 노래할 때에 단련된 성음을 간절하게 썼습니다. … 그러면 노래하고 읊고 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이 다섯 가지 ‘음·어·아·이·오’ 모음일 것입니다. 이것을 많이 수련하자면 호흡을 길게 뻗치는 실력을 가져야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음·어·아·이·오’ 이 오음이 제일 중대하고 필요한 것이며, 이 오음 속에는 필히 양성과 음성이 짝지어 있는데, 많이 단련된 소리가 장부로부터 나올 때 … 신명이 합하고 흥할 것입니다.”
김석구가 말하는 영가무도는 『시경?「모시서」에 비롯된 것이지만, 영가의 구체적인 발상법과 수련 방법의 원형은 아득히 잊혀진 상태로 남아 있다. 실제로 영가무도는 우리나라의 김일부에 의해 재탄생되었다. 그는 사색 중에 영감을 얻어 무의식의 경계에서 나오는 소리를 그대로 불렀으며, 또한 부르지 않고는 못 견딜 만큼 마음의 충동을 받은 것에서 시작한 것이다.
김일부의 삶에서 영가무도는 어떠한 위상을 차지하는가? 정역사상과 영가무도는 새의 두 날개와 같다. 한쪽 날개 죽지가 꺽인 새는 날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역사상과 영가무도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전자가 학술이라면, 후자는 몸과 마음을 닦는 수행이다. 『정역?에는 영가무도에 대한 일체 언급이 없다. 단지 ‘방랑음放浪吟’이라는 글귀만 나올 뿐이다.
무릇 많고 많은 도도한 선비들아,[凡百滔滔儒雅士]
나의 방랑음 한 곡조를 들어보시게나.[聽我一曲放浪吟]
서경 읽고 주역 배우는 일은 선천의 일이요,[讀書學易先天事]
이치를 궁구하고 수신하는 후천인은 누구인가.[窮理脩身后人誰]
가죽끈 세 번 끊은 우리 공부자께서는,[三絶韋編吾夫子]
무극은 말씀하지 않고 뜻만 두셨네.[不言无極有意存]
육십 평생의 미치광이 한 지아비는,[六十平生狂一夫]
스스로 웃고 남들도 웃으니 늘 웃음이 많구나.[自笑人笑恒多笑]
웃음 속에 웃음이 있으니 무슨 웃음을 웃는가.[笑中有笑笑何笑]
그 웃음을 잘 웃으며 웃고 노래하노라.[能笑其笑笑而歌]
권영원은 방랑음이 곧 ‘영가’무도라고 지적한 바 있듯이, 정역사상과 영가무도의 합일이 곧 김일부의 삶이었으며, 그것의 결정체가 『정역?인 것이다. 안타깝게도 영가무도는 사람에 따라 군대의 구령 또는 흥타령으로 변질되었거나, 귀신과 접신하는 수단으로 이용되는 역사를 겪었다. 특히 전라도와 충청도를 중심으로 지방색을 띤 각종 형태로 변형되었던 까닭에 지금은 영가무도의 원형이 무엇인지 모를 정도로 사라지고 없다. 따라서 영가무도의 원형 찾기와 복원을 통해 악보樂譜 만드는 작업이 가장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5. 나오는 말
김일부는 고향인 담골[淡谷: 충남 연산군 양촌면 남산리] 용바위 근처 풀밭의 잔디가 사그라지도록 뛰며 노래했던 까닭에 마을 사람들은 그를 미친 사람으로 여긴 적이 있다. 영가무도에 얼마나 심취했으면 친인척들이 한때는 문중 족보에서 파헤치려 했겠는가? 하지만 주위 사람들의 온갖 조롱과 비아냥을 딛고 일어나 『주역?을 극복한 『정역?을 선포하여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던 것이다.
원래 영가무도는 막혔던 혈맥을 관통시키고 정신의 안정과 집중력을 도모하는 유교의 건강 관리법으로 개발되었으나, 김일부는 과거의 잃어버린 영가무도를 일종의 주문 수행과 심신수련법으로 부활시켰던 것이다.
영가는 노래요 무도는 춤이다. 영가무도는 일종의 연속성을 띤 수련이다. ‘영’은 호흡조절을 통해 천천히 ‘음·아·어·이·우’를 읊조리는 것이고, ‘가’는 ‘영’의 단계를 넘어서 신나게 노래부르는 단계를, ‘무’는 율동에 맞추어 춤추는 것이고, ‘도’는 춤의 형식이 무너진 상태에서 아래에서 위로 솟구치는 동작을 일컫는다. 영·가·무의 단계가 생략된 채 머리가 천정에 닿도록 뛰는[蹈] 것을 지속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뜀뛰기[蹈]’가 영가무도의 전부는 아니다. 왜냐하면 무작정 솟구치는 뜀뛰기는 스포츠에 불과하며, 또한 무아의 상태에서 뜀뛰기의 엑스타시(Ecstasy) 체험만을 강조할 경우는 접신接神의 중요성만 남기 때문이다. 김일부가 꿈꾸었던 수행의 진정한 목표는 영가무도의 리드미컬한 반복을 통하여 육체의 건강과 정신의 안정이라는 심신통일心身統一에 있었다.
이처럼 영가(노래)와 무도(춤)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함수 관계가 있다. 흥겹게 노래부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들썩거리며 춤을 추게 마련이다. 읊조림[詠]에서 노래[歌]로, 춤[舞]에서 뜀뛰기[蹈]로 차츰차츰 옮겨 가다 보면 노래와 춤이 하나가 되는 경지에 이른다. 이런 점에서 ‘영가’는 자연의 리듬에 근거한 생명의 언어이며, ‘무도’는 잠들었던 생명 에너지를 깨어나게 하는 몸짓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하늘의 음성이자 율동의 질서인 율려律呂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영가무도는 소리와 춤의 극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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