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대회논문
시가로 보는 여동빈
원정근(상생문화연구소)
2022년 증산도 후천선문화 국제학술대회 발표논문
시가로 보는 여동빈
-증산도와 연계하여-
1. 진정한 대장부는 누구인가
2. 여동빈은 어떤 사람인가
2.1 여동빈의 이름
2.2 여동빈의 생존연대와 본적
2.3 여동빈의 저작
2.4 여동빈의 사승師承관계
3. 여동빈 시에 나타난 신선사상
4. 증산도와 여동빈
1. 진정한 대장부는 누구인가
여동빈은 진정한 대장부가 되기를 간절하게 꿈꾸었다. 사방팔방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높은 누각에 올라갔다. 검디검은 구름은 어디론가 아득히 사라지고 둥근 달만 외로이 떠있다. 여동빈은 넓디넓은 우주에 어찌 사람이 없으리오만, 선도仙道를 깨달아 신선이 된 사내 대장부가 과연 몇 사람이나 있느냐고 반문한다.
홀로 높은 누각에 올라 팔방을 바라보니,
검은 구름 흩어지고 달만 외롭구나.
망망한 우주에 사람은 많고 많건만,
몇 사람의 남아가 대장부인고?
여동빈이 말하는 진정한 대장부는 신선의 길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여동빈은 「사람을 가르치면서(훈인訓人)」에서 이렇게 말한다.
무슨 일로 애면글면 죽도록 쉬지 못하나?
명예와 이익에만 마음을 두네.
조화가 모두 미리 정해진 것을 알아야 할지니,
기회를 엿보는 마음으로 훗날의 근심을 만들지 말지어다.
대지에 인연이 있으면 절로 만날지니,
하늘이 준 것에 의지하여 다른 데서 구하지 말지어다.
널리 방편을 행하여 음덕을 보존할지니,
무슨 일로 좀스럽게 말과 소가 되리오?
세상 사람들은 온종일 명예와 이익을 얻기 위해 몸부림을 치면서 죽도록 잠시도 편안히 쉬지 못한다. 인생의 모든 일은 자연의 조화造化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다.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은 백년도 못되는 짧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리석게도 천년의 근심을 안고 살아간다.
인연이 있다면, 만나야 할 사람은 언젠가 반드시 만나게 되어 있다. 신선이 되는 길도 마찬가지다. 신선이 되는 길을 다른 데서 찾을 필요가 없다. 자신의 몸안에 그 비결이 다 들어 있다. 『음부경陰符經?에서는 “우주는 손안에 있고, 온갖 조화는 몸에서 생겨난다.”라고 하였다. 우주는 내 손안에 있는 것처럼 쉽게 장악할 수 있고, 온갖 조화는 우리 온몸에서 창조적으로 발현된다는 것이다. 어찌 인간이 자신의 참된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외물에 얽매여 소나 말처럼 부림을 당하는 덧없는 삶을 산단 말인가?
여동빈이 경복사景福寺의 담 벽에다 시를 지었다. 경복사는 지금의 사천성四川省 영산현營山縣의 대봉산大蓬山에 있다.
신선술 배울 곳 없다고 말하지 마소,
예나 지금이나 신선된 이 많다오.
이 시의 제목은 「경복사제景福寺題」이다. 여동빈이 신선술을 배울 곳이 없다고 한탄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지은 시다. 신선술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스승과 제자 사이에서만 비전秘傳되었기 때문에 뛰어난 스승을 만나지 않으면 제대로 익힐 수 없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신선술을 배울 수 있는 선도의 스승을 찾아 나섰던 것이다.
여동빈은 신선술을 배우려는 사람들에게 고금을 막론하고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 사람이 아주 많았다고 주장한다. 신선술을 배우기를 간절히 원한다면, 언젠가는 좋은 인연을 만나 신선술을 전수받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성명규지性命圭旨‧원집元集‧비승설飛昇說?에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 많은 사람들을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여러 신선들의 계보와 전기를 살펴본 적이 있는데, 비로소 예로부터 지금까지 신선이 된 사람이 십만 명이 넘고 집째 날아간 곳이 8,000 곳이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순양 어르신께서는 경복사 벽 사이에다 시 대구를 써놓으셨다. ‘신선술 배울 곳 없다고 말하지 마소, 예나 지금이나 신선된 이 많다오.’
『태상노군상청정경주해太上老君說常淸靜經注解‧권육卷六?에 여동빈의 시가 소개되어 있다. 여동빈은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서 선도를 수련해야 하는 이유를 밝히고 있다.
사람 몸 얻기 어렵고 도 밝히기도 어렵지만,
사람 마음 따라 도의 뿌리를 찾는다오.
이 몸을 이 생에서 제도하지 못하면,
다시 어느 때를 기다려 이 몸을 제도하리오?
사람이 죽으면, 언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태어날 수 있을지 그 누가 알겠는가? 그 누구도 보장할 수 없다. 사람의 몸을 받아 세상에 다시 태어나기는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이 땅위에 살아 있을 적에 선도의 근원을 닦아 이 몸을 제도하여 생겨나지도 죽지도 않는 ‘불생불사不生不死’의 신선이 되어야 한다.
묘선시苗善時는 『순양제군신화묘통기純陽帝君神化妙通記‧권삼卷三?에서 종리권이 하늘에 오르는 날, 여동빈에게 부촉하여 “내가 떠난 뒤에 인간 세상에서 잘 지내면서 공덕이 원만할 때 또한 응당 나처럼 옥허에 올라야한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여동빈이 “제자의 뜻은 선생님과 다릅니다. 반드시 천하 중생을 다 제도하고 올라가도 늦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지상에서 모든 사람을 제도하지 않는 한 결코 천상 세계에 올라가지 않겠다는 것이다.
도를 얻은 지 팔백 년,
칼을 휘둘러 사람의 목을 벤 적이 없지.
옥황상제의 명령이 내려오지 않았으니,
잠시 먹을 팔면서 세속의 흐름에 따르리라.
이 시의 제목은 「제봉상부천경관題鳳翔府天慶觀」이다. ‘제봉상부천경관’은 섬서성에 있는 봉상부 천경관에서 시를 짓는다는 뜻이다. 여동빈이 내단의 도를 수련하여 신선이 된지도 어언 팔백 년이 지났다. 칼을 휘둘러 개인의 욕망을 끊는데 사용했을지언정 사람의 목을 베는 일에 사용한 적이 없다. 여동빈은 옥황상제께서 하늘에서 명령을 내려주시지 않으니, 먹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면서 모든 중생을 제도하는 그날까지 인간 세상에 머물러 살겠다고 스스로 다짐한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여동빈은 진정한 의미에서 지상에 살아 있는 신선, 즉 ‘지상신선地上神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종리권은 『종려전도집鐘呂傳道集?에서 ‘지선地仙’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지선이란 천지 사이에서 절반 정도 이르고 신선의 재능을 갖춘 자이다. 대도를 깨닫지 못하고 중성의 법에 머물고 있다. 공효를 드러내지 못하고 단지 오래 살면서 세상에 머물 뿐이어서 인간 세상에서 죽지 않는 자이다.
삼단전에서 반복하여 단약을 제련하여 이루어서 길이 하단전에 머물게 한다. 형체를 단련하여 세상에 머물며 오래 살면서 죽지 않는 것을 얻어서 육지신선이 되므로 지선이라고 한다.
‘지선’은 ‘육지신선’(陸地神仙)이라 부르기도 한다. 기존의 ‘지선’은 공덕과 수행이 부족하여 천상의 선계仙界로 올라갈 수 있는 자격을 갖추지 못한 신선이라는 의미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여동빈이 천상으로 올라갈 수 있는 자격을 지니고서도 한 사람의 중생이라도 구제하지 못하면 천상에 올라가지 않으려고 했던 것은 모든 중생을 지옥에서 구제하지 않으면 결코 성불하지 않겠다고 원을 세웠던 보살의 정신과 견줄 수 있는 것이다.
청나라의 유헌정劉獻庭은 『광양잡기廣陽雜記‧권사卷四?에서 이렇게 말한다.
불교의 보살 가운데 관음과 신선 가운데 여동빈과 귀신 가운데 관우는 모두 신성한 사람으로 가장 중대한 시대적 운수를 타고난 사람이다. 그 그러한 까닭을 알 수 없지만 그러하다. 온 천하의 사람들이 아래로 아녀자와 어린이에 이르기까지 마음으로 귀의하여 그리워하지 않음이 없는데, 향불이 그들을 위해 독차지 하고 있다.
유헌정은 여동빈을 불교의 관세음보살이나 위정자와 민중의 뜨거운 사랑을 한 몸에 받아 신적인 존재로 부상했던 관운장과 동격의 차원에서 파악하고 있다. 여동빈은 관세음보살과 관운장과 더불어 삼대 신령의 한 사람이 된 것이다. 여동빈이 세상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것은 세상을 구제하기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한 지상신선으로 대중에게 친근감을 주었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여동빈은 사대부와 민중의 영생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대변한 인물이다.
우리는 아래에서 여동빈이 어떤 사람인가를 소개하고, 한시를 중심으로 여동빈의 신선사상을 검토한 뒤에 증산도의 신선사상과는 어떤 관계를 지니고 있는가를 톺아보고자 한다.
2. 여동빈은 어떤 사람인가
2.1 여동빈의 이름
여동빈은 일반적으로 성은 여呂이고 이름이 암巖이며 자는 동빈洞賓이며 호는 순양자純陽子로 알려져 있다. 원나라 초기의 조도일趙道一은 『역세진선체도통감歷世眞仙體道通‧권사십오卷四十五?에서 “선생 여암은 자는 동빈이고 호는 순양자이다.”라고 한다.
그러나 여동빈의 이름과 자에 대해 여러 가지 다른 견해가 있다. 남송의 축목祝穆은 『방여승람方輿勝覽‧권이십구卷二十九?에서 여동빈의 이름을 ‘암객巖客’이라 하고, 원나라 초기의 조도일趙道一은 『역세진선체도통감歷世眞仙體道通‧권삼십일卷三十一?에서 여동빈의 본래의 이름은 ‘소선紹先’이라 한다. 어떤 사람은 여동빈의 본래의 이름은 경瓊이고, 자는 백옥伯玉이라고 주장한다. 어떤 사람은 여동빈의 자를 ‘희성希聖’이라고 주장한다. 세상에서는 여동빈을 ‘회도인回道人’ 또는 ‘회산인回山人’이라 부르기도 한다. ‘회回’는 ‘여呂’와 같은 뜻이다. 왜냐하면 두 개의 입 구口로 이루어진 ‘회’는 ‘여’를 뜻하기 때문이다.
2.2 여동빈의 생존연대와 본적
도교의 각종 문헌자료에 수록에 되어 있는 여동빈의 생존연대는 대략 서로 일치한다. 여동빈은 대략 당나라 말기와 북송 초기에 활동하였고, 예부시랑 여위呂渭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여동빈의 구체적인 생존연대와 본적에 대해서 각 책에서 주장하는 바가 서로 다르다. 진지안秦志安은 『금련정종기金蓮正宗紀‧권일卷一?에서 『악주청양관석벽기岳州靑羊觀石壁記?를 인용하여 이렇게 말한다.
증조부 휘는 경이고 벼슬은 한림학사와 금자광록대부에 이르렀으며, 조부의 휘는 헌이고 지위는 하남 부윤에 이르렀으며, 부친의 휘는 위이고 예부상서에 이르렀다. 선생의 휘는 암이고 자는 동빈이며 포주 포판의 영락현 사람이다. 당 덕종 흥원 14년 병자년 4월 14일에 임금수 아래에서 태어나고 당 문종 개성 6년 정유년 진사에 급제하였으니, 나이 22살이었다.
진지안에 따르면, 여동빈은 여위의 아들로서 당 덕종德宗 흥원興元 14년 병자년 4월 14일에 임금수 아래에서 태어나서 당 문종文宗 개성開成 6년 정유년에 진사에 급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진지안의 여동빈의 출생년도에 대한 기술에 역사적 사실과 부합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점이다. 첫째, 당 덕종 흥원 연호는 단지 1년만 사용했기 때문에, 아마도 흥원 14년은 정원貞元 14년(798)을 잘못 기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둘째, 정원貞元 14년의 간지 기년은 무인戊寅이지 병자丙子가 아니라는 것이다. 병자는 정원 12년(796년)일 것이다.
원나라의 묘선시苗善時는 『순양제군신화묘통기純陽帝君神化妙通記?에서 여동빈에 대해 이렇게 기술한다.
삼가 『도통록?에 따르면 순양제군의 성은 여이고 이름은 암이며 자는 동빈인데, 당 하동부 영락현 사람이다.······당 덕종 정원 14년 4월 14일 사시에 뭇 사람들이 한 마리 흰 학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는데, 끝내 방 휘장 속으로 들어가서는 볼 수 없었다. 어머니가 침실에서 또한 꿈을 꾸다가 놀라서 깨어났다. 즉시 진인이 태어났는데, 이상한 향기가 방에 가득하여 종일토록 흩어지지 않았다.
묘선시는 여동빈이 덕종 정원 14년(798)에 하동부 영락현에서 태어난 것으로 본다. 진지안이 여동빈의 출생연도로 제시한 당 덕종 흥원 14년을 당 덕종 정원 14년으로 수정하였다.
금나라의 원종의袁從義는 『유당순양여진인사당기有唐純陽呂眞人祠堂記?에서 이렇게 말한다.
진인의 휘는 암인데, 자는 동빈이고 도호는 순양자이다. 세상에서는 하중 영락 사람이라 하는데, 예부시랑 여위는 곧 그의 조부이다. 경종 보력 원년에 진사에 응시하여 갑과에 선발되었다.
진지안의 『금련정종기?에 기재된 내용과 대략 비슷하지만 약간 차이가 난다. 진지안의 『금련정종기?는 여위를 여동빈의 부친으로 보고 있지만, 원종의는 여위를 여동빈의 조부로 보고 있다. 또한 원종의는 여동빈이 진사에 급제한 때를 당 경종敬宗 보력寶歷 원년元年(826)이라고 하여 진지안의 『금련정종기?보다 약 15년이 더 앞서는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원나라의 조도일趙道一은 『역세진선체도통감歷世眞仙體道通‧권사십오卷四十五?에서 여동빈에 대해 이렇게 서술한다.
선생 여암은 자는 동빈이고 호는 순양자이며 세상에 전하는 것으로는 동평 사람이라고 한다. 어떤 곳에서는 서경 하남부 포판현 영락진 사람, 즉 지금의 하동 하중부라고 여긴다. 증조부 여연지는 당나라에서 벼슬을 하였는데, 절동 절도사를 지냈다. 조부 여위는 진사로 급제하였다가 덕종 정원 연간에 관직이 예부시랑에 이르렀고 뒤늦게 담주사자가 되었다.····선생은 곧 여양의 아들이다. 정원 12년 병자 4월 14일에 임금수 아래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민첩하였으며 날마다 만언을 외었는데, 문종 개성 2년 정사 진사로 발탁되었다. 발탁될 때, 나이 42세였다.
조도일에 따르면, 여동빈은 여위의 손자이고 여양의 아들로서 기원후 796년에 태어났으며 본적은 동평이다. 그런데 조도일은 어떤 곳에서는 여동빈의 본적을 하남부 포판현 영락진, 즉 하동 하중부 사람으로 기술하고 있다.
원나라 신문방辛文房은 『당재자전唐才子傳‧권팔卷八?에서 여동빈의 전기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여암은 자가 동빈이고 경조 사람으로, 예부시랑 여위의 손자이다. 함통 초에 급제하여 두 차례 현령을 지냈다. 그러나 황소의 난을 만나 그는 호연히 은거할 뜻을 품고 가족을 데리고 종남산으로 돌아간 뒤 스스로 강호를 떠돌았다.
청나라의 요복균姚福均은 『주정여문鑄鼎餘聞?에서 송나라의 왕태초王太初가 편찬한 『집선전集仙傳?을 인용하여 “여동빈의 자는 동빈이고 다른 자는 희운인데, 구강 사람이다.”(呂嵓子洞賓, 一字希雲, 九江人也.)라고 주장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여동빈의 본적은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영락永樂, 경조京兆, 동평東平, 구강九江 등이 바로 그것이다.
2.3 여동빈의 저작
명청 이래로 여동빈의 이름으로 저술된 책이 날이 갈수록 많아졌다. 『장외도서?에 수록된 『여조지?, 청나라 건륭 연간에 유체서 등이 각인한 『여조전서? 등이 있다. 송나라의 저술목록에 여동빈의 저작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구진옥서九眞玉書?, 『순양진인금단결純陽眞人金丹訣?, 『여공요두배가呂公窑頭坯歌? 등이 있다. 원나라에서 여동빈 전기와 관련된 저술로는 『전검집傳劍集?, 『진상집眞常集?, 『단결연정론丹訣演正論?, 『심역心易?, 『선통비결仙統秘訣?, 『여동빈자전呂洞賓自傳?, 『여공심심춘呂公沁心春?, 『순양진인대단가純陽眞人大丹歌?, 『순양진인현빈가純陽眞人玄牝歌?, 『금단시가金丹詩訣?, 『순양진인약석제純陽眞人葯石制?, 『황제음부경집해黃帝陰府經集解?, 『고효가敲爻歌?, 『백자비百字碑?, 『요삼득일경了三得一經?, 『주후삼성편肘後三成篇? 등이 있다. 이런 책들이 참으로 여동빈의 저작인가는 아직도 확정되지 않고 있다. 대부분 후인들이 여동빈의 이름을 빌려 지은 작품으로 진위를 판별하기 어렵다.
종리권鐘離權과 여동빈呂洞賓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대략 북송 시기 말년이다. 종리권과 여동빈의 주요저작으로 알려진 책은 『종려전도집鍾呂傳道集?(증조曾慥가 편집한 『도추道樞?에는 『전도편傳道篇?으로 기재되어 있다.), 『영보필법靈寶畢法?, 『서산군선회진기西山群仙會眞記?, 『순양진인혼성집純陽眞人渾成集?, 『백문편百問篇?, 『주후삼성편肘後三成篇?, 『수진지현편修眞指玄篇?, 『중묘편衆妙篇?(증조가 편집한 『도추道樞?에 종리권과 여동빈의 저술로 기재되어 있다.), 『전당시全唐詩?에 수록된 여암의 시 등이 있다. 『종려전도집鍾呂傳道集?, 『영보필법靈寶畢法?, 『서산군선회진기西山群仙會眞記? 등을 참조하면 대체로 종려의 내단 학설의 기본이론을 엿볼 수 있다. 『태을금화종지太乙金華宗旨?의 본래의 이름은 『여조선천일기태을금화종지呂祖先天一氣太乙金華宗旨?이다. 비록 여동빈의 이름을 빌리기는 했지만 위서僞書로 판명이 났다. 남송시대 전진교파의 창시자 왕중양王重陽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2.4 여동빈의 사승師承관계
여동빈의 이름은 언제나 종리권과 연결하여 ‘종려種呂’라고 부른다. 도교사에서 종리권이 여동빈의 스승이란 사실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현존하는 도교의 문헌자료를 살펴보면, 여동빈의 스승으로 이름을 알 수 있는 사람은 대략 네 사람이 있다. 고죽진인苦竹眞人, 화룡진인火龍眞人, 최희범崔希範, 종리권種離權 등이다.
첫째, 고죽진인이다. 조도일의 『역세진선체도통감歷世眞仙體道通鑑?에는 고죽진인과 여동빈의 관계를 여동빈의 자술을 빌어 이렇게 해명한다.
나는 곧 경조 사람이다. 당 말기에 여러 차례 진사에 응시했으나 급제하지 못했다. 때문에 화산을 노닐다가 종리자를 만나 연명술을 전수받았다. 얼마 뒤 고죽진인을 만나 해와 달을 번갈아 함께하는 술법을 전수받았다. 다시 종리권을 만나서 금단의 신묘함을 모두 얻었다.
조도일에 따르면, 여동빈은 먼저 고죽진인을 만나서 해와 달을 번갈아 함께하는 술법을 전수받은 뒤에 다시 종리권을 만나 금단의 비결을 온전하게 터득했다고 기술한다. 또한 원나라의 신문방은 『당재자전唐才子傳‧권팔卷八?에서 “고죽진인을 만나서 곧 귀신을 부릴 수 있었다.”라고 한다.
둘째, 화룡진인이다. 조도일의 『역세진선체도통감?에는 화룡진인과 여동빈의 관계를 이렇게 해명한다.
뒤에 당나라 진사 여소선이 있었는데, 자주 시험을 치렀으나 급제하지 못하고 천하를 맘껏 주유하였다. 먼저 여산에서 화룡진인을 만나 검법을 전수받았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여동빈이 화룡선인에거 검술을 배웠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여동빈은 내단수련법에 탁월한 성과를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검술에도 뛰어난 인물로 높은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여동빈의 형상을 묘사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은 검이다. 검은 세속의 욕망을 단호히 단절시킨다는 의미를 지닌 것이다. 번뇌를 끊고 색욕을 끊으며 탐진을 끊는 것이다. 송나라 오증吳曾은 『능개재만록能改齋漫錄? 「여동빈전신선법呂洞賓傳神仙法」에서 “실로 세 가지 검이 있다. 첫째는 번뇌를 끊는 것이고, 둘째는 탐진을 끊는 것이며, 셋째는 색욕을 끊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검이다.”라고 한다. 중요한 것은 여동빈에서 검술은 단순히 다른 사람과 싸우기 위한 수단이나 도구가 아니라 내단 수행의 방법이라는 점이다.
옛날 화룡군을 만난 적이 있는데,
한 검을 전하니 이 몸의 짝으로 삼는다.
천지의 산하는 얽혀진 거품을 따른 것이고,
별과 해와 달은 멈춘 수레에 맡겼네.
모름지기 본성은 여러 겁을 지나온 것임을 알아야 하리니,
헛되이 인간 세상에서 수많은 봄을 보내누나.
어젯밤 종려 선생께서 한 말씀을 전하시니,
육천의 궁전이 티끌이 되려 하네.
이 시의 제목은 「득화룡진검법得火龍眞劍法」이다. ‘득화룡진검법’은 화룡 진인의 검법을 얻어 지은 시라는 뜻이다. 여동빈은 화룡 진인을 만나 검법을 전수받았다. 검은 세속의 욕망을 단호히 끊어 신선이 되는 것을 뜻한다. 이런 의미에서 여동빈을 ‘검선劍仙’이라고 부른다.
셋째, 최희범이다. 조도일의 『역세진선체도통감?에는 최희범과 여동빈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한다.
다시 희종 광명 원년에 최공이 전한 『입약경?을 만났는데, 성명을 수행함에 조금도 차이가 없음을 알았다.
여동빈이 최희범을 만났다는 사실은 그의 수도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왜냐하면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여동빈의 내단사상은 대체로 최희범의 『입약경?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송의 증조曾慥는 『도추道樞‧권삼십칠卷三十七?에 나오는 『입약경入藥鏡‧중편中篇?에서 이렇게 말한다.
순양자 여동빈이 최공에게서 이를 들은 적이 있는데 탄식하면서 말했다. ‘내가 알기로 수행에 근거가 있으면 성명에 어긋남이 없고 도가 그 가운데서 이루어진다.’
최희범의 『입약경?은 오행과 팔괘의 이론과 내단학설을 하나로 결합하여 천인합일의 수련체계를 정리한 것이다. 최희범은 마음을 거울로 삼고 정기신을 약으로 삼아서 정기신을 단련하는 과정을 ‘입약’이라 한다.
넷째, 종리권이다. 종리권이 어느 시대 사람인가를 두고 여러 가지 논란이 제기된다. 대다수의 문헌에서 종리권을 한종리라고 하여 한대 사람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명나라의 양신楊愼은 한은 진나라를 이은 한나라가 아니라 오대 유고가 세운 후한(947-950)이라고 주장한다.
종리권의 제자로는 여동빈, 진박, 정문숙, 왕노지 등이 있다. 그들은 모두 오대와 송초의 인물들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종리권이 단도丹道를 신라에까지 전파시켰다는 사실이다. 인조 때의 작자 미상의 『해동전도록(海東傳道錄?과 정조 때의 이규경李圭景(1788-?)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종리권의 단도를 전수받은 신라 사람으로 최승우, 김가기, 승려 자혜 등을 제시하고 있다.
여동빈과 종리권의 만남은 도교의 내단사상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왜냐하면 두 사람의 만남은 도교사에서 외단에서 내단으로 전환하는 결정적 계기를 이루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조우에 대해서는 도교문헌에 자주 등장한다. 송나라의 섭몽득葉夢得은 『암하방언巖下放言‧권중卷中?에서 여동빈이 종리권에게서 도를 얻었다고 한다.
세상에서는 신선 여동빈은 이름은 암이고 동빈은 그의 자이며 당나라의 여위의 후손으로 오대시기에 종리권을 따라 도를 얻었다고 전한다.
송나라 오증吳曾은 『능개재만록能改齋漫錄? 「여동빈전신선법呂洞賓傳神仙法」에서 이렇게 말한다.
여동빈이 스스로 전한 적이 있다. 월주에 석곽이 있는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곧 경조 사람이다. 당 말기에 여러 차례 진사에 응시했으나 급제하지 못했다. 때문에 화산을 노닐다가 종리권을 만나 금단대요의 방법을 전수받았다. 후에 고죽진인을 만나 귀신을 부릴 수 있게 되었다. 다시 종리권을 만나 진단의 오묘한 요지를 모두 얻었다.
여동빈은 자신이 유생의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하지만 공명을 추구하는 벼슬살이는 자신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버거워 평민의 삶을 자발적으로 선택하였다고 스스로 고백한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세속의 명리를 추구하는데 안달복달하지만, 여동빈은 상청궁에 올라가 옥황상제를 모시고 신선의 삶을 살겠다고 다짐한다.
유생으로 태어나 태평시대를 만났건만,
늘어진 갓끈은 무겁고 갑갑하며 베옷이 가볍네.
뉘라서 세상의 명예와 이익을 다투리오?
신하로서 옥황상제를 섬기러 상청으로 돌아가려네.
이 시의 제목은 「운방 종리권 스승님께 보이면서(呈鐘離雲房)」이다. 여동빈呂洞賓이 종리권鐘離權을 만났을 때 지은 시다. ‘증呈’은 보인다는 뜻이다. ‘종리鐘離’는 ‘종리권鐘離權’을 가리킨다. ‘운방雲房’은 종리권의 자이다. 송나라의 승려 지반志盤이 지은 『불조통기佛祖統紀‧권사십이卷四十二?에 “종리권은 호가 운방이다.”(種離權, 號雲房.)라고 하였다. 하지만 종리권의 생졸 연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원나라의 신문방辛文房이 지은 『당재자전唐才子傳?에는 “앞서 종리권이란 사람이 있었다. 자는 운방이다. 어느 시대 어디 사람인지 모른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명나라 양신楊愼은 『승암전집升庵全集‧권칠십삼卷七十三?에서 “종리권은 여동빈과 동시대 사람이다. 한나라 윤천이 가려 뽑은 『당시절구?라는 책의 끝에 종리권의 시 한 수가 있는데, 이를 입증한다.”라고 하였다.
「여조본전呂祖本傳」에 따르면, 종리권의 시는 여동빈이 장안의 술집에서 종리권을 만났을 때 지은 시라고 한다. 그러나 『당재자전唐才子傳?에서는 여동빈이 대도를 터득하기 위해서 명산을 찾아다니다가 섬서성陜西省에 있는 태화산太華山에서 우연히 종리권을 만났다고 전한다. 종리권은 신선 설화 가운데 가장 유명한 8명의 신선 중 한 사람이다. 팔선八仙은 종리권鍾離權, 장과로張果老, 이철괴李鐵拐, 한상자韓湘子, 여동빈呂洞賓, 조국구曺國舅, 남채화藍采和, 하선고何仙姑 등을 가리킨다. 7명의 남자 선인과 1명의 여자 선인이다. 팔선은 당송대의 문인의 기록에서 등장하다가 하나의 개념으로 묶인 것은 원대의 일이다.
종리권과 여동빈이 장안의 주막에서 만났다. 종리권이 장안의 주막에서 여동빈을 만나자 즉석에서 주막의 벽에다 다음과 같은 세 수의 시를 지었다.
앉으나 누우나 언제나 술 한 병을 가지고 다녔고,
두 눈으로는 세상일을 모르도록 했다네.
하늘과 땅은 이렇게 큰데 성도 이름도 없으니,
인간 세상을 떠도는 한 사내일 뿐일세.
도를 터득한 참된 신선은 만나기 쉽지 않으니,
언제나 돌아가 섬길 수 있을꼬?
사는 곳은 푸른 바다에 이어져 있다고 말하니,
또 다른 봉래 제일봉일세.
기쁜 일 떠올리며 담소 나누는 것 싫어하지 말지니,
이별과 혼란을 떠올리면 정신만 해친다네.
가만히 손꼽으며 처음부터 세어 볼 때,
몇 사람이나 태평시절을 만났을꼬?
여동빈은 노인의 시풍이 천지를 호령할 정도로 호방함에 깊이 찬탄하였다. 여동빈이 노인에게 함자를 묻자 노인은 “나의 성은 종리鍾離이고 이름은 권權이며 자는 운방이다.”라고 하였다.
「여조본전呂祖本傳」에는 여동빈의 탄생설화를 전하고 있다. 여동빈의 어머니가 여동빈을 낳았을 때, 당나라 때의 마조馬祖선사가 여동빈의 관상을 보고 다음과 같이 예언을 했다고 한다.
이 아이의 골상은 평범하지 않으니, 본래 어지러운 세상을 벗어난 인물이다. 다른 때 여산을 만나면 머물러 살고 종을 만나면 두드릴지니, 마음에 두고 기억하라.
중요한 것은 “우려즉거遇廬則居, 우종즉고遇鍾則叩.”이다. 여산廬山를 만나면 그곳에 머물러 살고, 종리권鍾離權을 만나면 머리를 조아리고 절하여 스승으로 삼으라는 뜻이다. 여동빈은 뒷날 마조선사의 예언처럼 여산의 선인동에서 살았고, 종리권에게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절을 하여 그를 스승으로 모셨다고 한다. 『당재자전唐才子傳?에서는 여동빈이 여산에서 몇 십년 선도를 닦아서 금단을 얻었다고 한다. 종리권과 여동빈을 합하여 종려鍾呂라고 부른다. 종리권이 여동빈에게 술 한 잔을 권하면서 시 한 수 짓기를 요청하였다. 그러자 여동빈이 주막의 벽에 쓴 것이 바로 「증종리운방呈鐘離雲房」이라는 시다. 종리권은 여동빈의 시를 보고 크게 기뻐하면서 세속을 버리고 산속에 들어가 선도를 닦기를 권유하였다. 그러자 여동빈이 종리권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절을 하면서 스승으로 모셨다.
여동빈과 종리권의 만남에서 흥미로운 것은 ‘황량몽黃粱夢’에 얽힌 이야기다. ‘황량몽’은 본래 심기제沈旣濟의 『침중기枕中記?에 나오는 말이다. ‘황량몽’의 고사는 명리를 추구하는 인생의 덧없음을 꿈에 비유한 것이다. 노생盧生이 한단으로 가는 도중에 여옹呂翁이란 사람을 만나 베개를 빌려 잠깐 잠을 잤는데, 꿈속에서 평생 동안 온갖 부귀영화를 누렸으나 깨어 보니 메조로 밥을 짓는 더없이 짧은 시간으로 한순간의 부질없는 꿈이었다는 데에서 유래한다. 인생은 덧없는 한바탕의 꿈과 같다는 것이 ‘황량몽’의 근본주제이다.
그런데 원나라 묘선시는 『순양제군신화묘통기純陽帝君神化妙通紀?에서 ‘황량몽’을 통해 종리권과 여동빈의 만남을 기술하고 있다. 노생과 여옹의 관계를 종리권과 여동빈의 관계로 바꾸었다. 이는 원나라 초기 전진교의 흥성과 함께 자신들의 교조로 떠받드는 종리권과 여동빈을 추숭하기 위한 것이었다.
여동빈은 본래 당나라 때 유학자 집안에 태어나 과거에 급제하여 온 천하를 태평하게 하려는 원대한 이상과 포부를 지녔다. 그러나 여동빈은 벼슬살이에 얽매여 명예와 이익을 얻기 위해 아등아등 발버둥을 치며 사는 것보다 신선이 되어 하늘에 올라가 옥황상제를 모시고 그 무엇에도 걸림이 없이 자유롭게 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이원국은 『내단?에서 종리권과 여동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종리권과 여동빈은 도교 기공 양생사에서 핵심이 되는 두 명의 인물이다. 송원의 남종과 북종으로부터 명청의 동파와 서파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모두 종려의 진전을 얻었다고 자칭하며 종려를 받들어 조사로 삼고 있다. 종려가 광범위한 호소력과 영향력을 지니도록 하기 위하여 북송 이래로부터 도교 인물들은 이야기를 엮어내기 시작하여, 종려를 신적인 존재로 받들었는데 특히 여동빈의 경우가 더 그러하다. 이리하여 종려에 관한 다량의 기록이 출현하게 되었는데, 종려는 신선이 되어 당송 팔선 가운데 열거되었다. 그들의 일생은 명확하게 알기 어려워 오늘날의 연구 작업에는 어느 정도의 어려움이 수반된다.
종리권과 여동빈의 만남은 도교의 내단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왜냐하면 도교의 내단술의 전개과정과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도교의 문헌자료에서는 두 사람의 만남에 대해 여러 가지 논의를 제시하고 있다. 진지안은 『금련정종기金蓮正宗紀‧권일卷一?에서 종리권과 여동빈이 여산에서 만났다고 기술하고 있고, 남송의 나대경羅大經은 『학림옥로鶴林玉露?에서 악양嶽陽에서 만났다고 한다. 조도일은 『역세진선체도통감?에서 종리권이 태화산에서 노닐다가 장안으로 가는 도중에 만났다고 하며, 북송의 진관秦觀은 『회해집淮海集?에 처음으로 종리권과 여동빈이 태화산에서 만났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도와 덕이 높으시니 만나 뵙기 어렵고,
또 듣자니 동쪽으로 행선단에 가신다죠.
봄빛이 완연한데 지팡이 끝에 술 한 병,
산마루에 구름이 모여 오색의 관을 썼네.
바닷물 마시는 거북이를 아는 이 없고
산을 태우는 부자 귀신을 보기 어렵네.
선생님이 가신 뒤에는 이 몸 응당 늙으리니
가난한 유자에게 환골단을 주소서.
이 시는 본래 제목이 없다. 이 시는 「여조본전呂祖本傳」에 따르면, 여동빈이 종리권과 장안의 주막에서 헤어질 때 지은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원나라의 신문방辛文房이 편집한 『당재자전唐才子傳??에서는 “여암은 이미 대도에 독실한 뜻을 품은지라 이름난 산을 유람하면서 태화산에 이르러 운방을 만나 기이한 사람인 줄을 알고 절을 하면서 시를 지어 말했다. ‘선생님이 돌아가신 뒤에 응당 늙으리니, 가난한 선비에게 환골할 단을 주소서.’ 운방이 법기로써 허락하였다. 이 때문에 『영보필법십이과?를 지어 본성과 목숨의 요지를 모두 궁구하였다.”라고 하여, 이 시를 여동빈이 태화산에서 종리권을 만나 지은 것이라고 한다. 이 시는 북송의 장정張靚이 지은 『아언잡재雅言雜載?에 실려 있지만, 『전당시?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다.
종리권은 여동빈의 스승이다. 여동빈은 도덕이 높으신 스승인 종리권을 어렵사리 만났다. 아마도 대도의 인연이 있어서리라. ‘유구필응有求必應’이다. 간절히 구하면 반드시 이루어지는 법이다. 여동빈은 종리권이 떠나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을 염려하였다. 이 시는 종리권이 신선이 되어 천상으로 떠나기 전에 환골탈태할 수 있는 내단의 비결을 주기를 간청하기 위해 지은 것이다.
3. 여동빈 시가에 나타난 신선사상
『종려전도집?에서 여동빈은 종리권에게 “사람이 태어나서 병들지 않고 편안하며 늙지 않고 건장하며 죽지 않고 사는 것은, 어떤 도라야 이와 같이 될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한다. 종리권은 여동빈의 물음에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사람이 태어나서 윤회에서 벗어나고자 하면, 다른 종류의 몸에 들어가지 않아야 하고 자기 몸으로 하여금 병들거나 늙거나 죽거나 괴롭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하늘을 이고 땅을 밟으며 음을 지고 양을 안으면 사람이 된다. 사람이 되어서는 귀신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하고 사람 가운데서 수련하여 신선이 되어야 하고 신선 가운데서 하늘에 올라 천선이 되어야 한다.
종리권은 불교의 윤회사상을 받아들인다. 사람이 수련을 통해 천상의 신선이 되어야만 이 세상에서 윤회하지 않고 생로병사에서 벗어나 영원히 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종리권과 여동빈이 꿈꾸는 최고의 신선은 바로 천선天仙이다. 종리권은 “신선에 다섯 등급이 있다. 귀선, 인선, 지선, 신선, 천선으로 같지 않지만 모두 신선이다.”라고 하여, 신선을 다섯 등급으로 나누었다. 귀선鬼仙, 인선人仙, 지선地仙, 신선神仙, 천선天仙이 바로 그것이다.
인선은 소성법을 벗어나지 못하고, 지선은 중성법을 벗어나지 못하며, 신선은 대성법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 세 가지 법-소성과 중성과 대성-은 사실은 하나이다. 법으로써 도를 구하는데, 도는 진실로 어려운 것이 아니다. 도로써 신선이 되기를 구한다면, 신선이 되는 것도 매우 쉽다.
신선이 되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 소성법과 중성법과 대성법이다. 소성법小成法은 인선人仙이 되는 법이고, 중성법中成法은 지선地仙이 되는 법이며, 대성법大成法은 신선神仙이 되는 법이다. 『영보필법?에서는 삼성법三成法을 삼승三乘-소승小乘, 중승中乘, 대승大乘-으로 표현한다.
북송 때의 도사 장백단張伯端은 『오진편悟眞篇?에서 “신선이 되기를 배우고자 하면 모름지기 하늘의 신선을 배워야 한다. 오직 금단만이 가장 확실하다.”라고 하였다. 최고의 신선인 천선이 되기 위해서는 금단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령한 한 알의 금단,
하늘가와 땅 모퉁이에서도 편안치 않네.
경전을 토론하여 궁구함에 깊이 탐구하지 말지니,
산에 오르고 물에 이르러도 아득히 볼 수 없네.
밝은 빛이 들을 수도 볼 수도 없는 정수리에 있고,
붉은 빛이 높이 혼돈의 끝에 머무네.
온 세상 사람들이 만약 깃들 곳을 안다면,
범인에서 벗어나 성인으로 들어가기 어렵지 않으리라.
이 시는 여동빈의 칠언 율시이다. 내단의 도를 터득하는 길은 인간 세상을 멀리 떠난 곳에서 찾을 필요가 없다. 또한 내단의 경전을 토론하고 궁구하는 데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몸의 천지기운을 돌려 한 알의 신묘한 ‘금단金丹’을 이루는 것이 내단 수련의 핵심과제이다. ‘금단金丹’은 외단에서 황금이나 단사를 정련하여 만든 장생불사의 영약을 뜻한다. ‘금액환단金液還丹’ 또는 ‘금액대단金液大丹’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내단을 수련하는 것을 가리킨다. ‘광명光明’과 ‘혁적赫赤’은 모두 내단을 가리킨다. 내단을 수련하여 완성하기 위해서는 몸안의 기운을 돌려 정수리에 이르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만약 금단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찾는다면, 평범한 사람의 영역에서 벗어나 성인의 경지에 들어갈 수 있다. ‘초범입성超凡入聖’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성인은 도교의 신선을 말한다.
만겁에 천생을 거쳐 이 삶에 이르러,
이 몸이 비로소 가볍게 날 수 있음을 깨닫네.
집을 버리고 나라를 떠나 구름과 산 밖에서,
혼백을 수련하고 온전히 하니 해와 달의 정기로세.
지극한 사람이 단전을 담론함에 견주어 보고,
큰 약을 궁구하려고 삼청을 찾는다오.
이제 참된 신선을 만나 얻었으니,
천상 자부의 신선의 문에서 성명을 얻노라.
이 시의 제목은 「참사람 정사와 원시 두 신선께 드리면서(헌정사원시진인이선獻鄭思遠施眞人二仙)」이다. 진인인 정사와 원시 두 신선께 드리는 시라는 뜻이다. 정사와 원시 두 신선은 어떤 사람인지 자세히 알 수 없다.
“백천만겁난조우百千萬劫難遭遇”라는 말이 있다. 억겁의 긴 시간이 지나도록 만나기 어렵다는 뜻이다. 불교에서는 이를 ‘맹구우목盲龜遇木’에 비유하여 말한다. 인간의 몸을 받아 태어나기는 눈먼 거북이가 바다에 떠다니는 나무판자를 만나기만큼 어렵다는 것이다. 여동빈은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길을 얻었다. 가정과 국가를 떠나 깊은 산속에서 혼백을 수련하고 해와 달의 정기를 얻었다. 해는 원신元神을 뜻하고, 달은 원기元氣를 뜻한다. 원신과 원기가 교합하면 비로소 내단을 수련하여 완성할 수 있다. 원신과 원기는 각기 진성眞性과 진명眞命을 가리킨다. 여동빈은 마침내 자부紫府, 즉 선경仙境에 올라가 신선세계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오묘하고 오묘하며 오묘한 가운데 오묘하고,
현묘하고 현묘하며 현묘한 가운데 현묘하네.
행동과 말이 모두 도를 펼치고,
언어와 침묵이 모두 신선이로세.
손안에서는 기이한 구슬 같고,
하늘에서는 둥근 달 같네.
그때 내공이 원만해진 뒤,
곧장 대라천으로 들어가리라.
이 시의 제목은 「오언」이다. 선도는 지극히 현묘하기 때문에 언어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여동빈의 신선술은 손안에서는 쥐고 있는 기이한 여의주와 같고, 허공에서는 휘영청 밝은 달과 같다. 여동빈은 내단 수련을 통해 신선이 되어 옥황상제가 산다는 대라천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기를 기르는 건 말을 잊고 굳게 지키는 데 있으니,
마음을 가라앉히고 함 없음을 행한다.
움직임과 고요함의 근원을 알아서,
일 없으니 다시 무엇을 찾으리오!
참되고 항상된 도를 닦는 사람은 사물에 응해야 하니,
사물에 응함에 미혹되지 않아야 한다.
미혹되지 않으면 본성이 절로 머물고,
본성이 머물면 기가 절로 돌아온다.
기가 돌아오면 단이 절로 응결되고,
병 속에 감과 리가 섞인다.
음과 양이 반복되어 생겨나고,
두루 화육시키니 우레가 울린다.
흰 구름은 산 정상에 모이고,
감로수는 수미산을 씻는다.
스스로 장생주를 마시고,
소요하니 뉘라서 알 수 있으리오!
앉아서 줄 없는 곡을 듣고,
조화의 기틀에 밝게 소통한다.
모두 20구이니,
반드시 하늘 사다리에 오른다.
이 시의 제목은 「백자비百字碑」이다. ‘백자비百字碑’는 오언시 20구로서 100자로 되어 있다. 내단 수련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기를 길러야 한다. 기를 기르기 위해서는 말을 잊고 전일함을 오롯이 지키는 경지에 이르러야 하고, 마음을 가라앉혀 모든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이 없는 무위無爲의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 유일명劉一明은 「백자비주百字碑注」에서 “성명의 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선천의 허무의 진일의 기를 닦고 기를 뿐이니, 따로 다른 것이 없다.”(性命之道, 始終修養先天虛無眞一之氣而已, 別無他物.)라고 하여, 도교의 내단 수련법은 ‘허무진일虛無眞一’의 기를 수련하는 데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본성과 목숨을 동시에 수련하는 성명쌍수법을 통해 우주만물의 ‘창조적 변화작용의 기틀’(조화기造化機)에 통달하면,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과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여동빈은 내단 수련의 비결을 천지조화天地造化의 기틀인 움직임과 고요함의 유래를 알아서 음양(감坎과 리離, 수水와 화火)이 화합하는 이치를 깨닫는 데 있다고 강조한다. 천지의 음양이 승강하는 이치를 인체에 적용시키는 것이 여동빈 내단 수련의 핵심이다.
사람은 유한의 목숨과 무한의 본성을 하나로 융합한 통일체이다. 도교의 내단 사상은 유한한 생명을 지닌 인간 존재가 무한의 도체道體인 본성을 회복하여 장생불사長生不死하는 것을 궁극적 목표로 삼는다. 내단의 도는 본성과 목숨의 근본이고 삶과 죽음을 판가름하는 중요한 관건이다. 내단을 수련하여 천지조화天地造化를 온몸으로 체험하는 것이 여동빈의 내단 사상의 중요한 특징이다. 천지조화는 천일합일天人合一과 천인동구天人同構에 기초한다. 대우주의 조화와 소우주의 조화가 둘이 아니라는 것을 자신의 몸속에서 직접 체득하는 것이다.
여동빈의 선도는 우주론적 근거를 지니고 있는데, 그 핵심은 도론이다. 여동빈은 종리권에게 “이른바 대도란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한다. 종리권은 “대도는 형체도 없고 이름도 없으며 물어볼 수도 없고 응답할 수도 없다. 그 크기는 밖이 없고 그 작기는 안이 없다. 알 수도 없고 행할 수도 없다.”라고 한다. 종리권은 대도가 인간을 포함한 우주만물이 생성하고 분화하는 존재근거임을 이렇게 말한다.
도는 본래 물을 수 없고, 묻더라도 응답할 수 없다. 참된 근원이 한 번 나뉘어짐에 따라 큰 순박함이 이미 흩어졌다. 도에서 일이 생겨나고, 일에서 이가 생겨나며, 이에서 삼이 생겨난다. 일은 체이고, 이는 용이며, 삼은 조화이다. 체와 용은 음양에서 벗어나지 않고, 조화는 모두 교구를 따른다. 위와 중간과 아래가 나열되어 삼재가 된다. 하늘과 땅과 사람이 모두 하나의 도를 얻었다. 도에서 이기가 생겨나고 기에서 삼재가 생겨나며 삼재에서 오행이 생겨나며 오행에서 만물이 생겨난다. 만물 가운데 가장 신령하고 존귀한 것이 사람이다. 오직 사람만이 만물의 이치를 궁구하고 자기의 본성을 다하며 이치를 궁구하고 본성을 다하여 목숨에 이른다. 목숨을 온전히 하고 본성을 보존하여 도에 합치함으로써 응당 천지와 더불어 그 견고함을 일치하여 함께 장구함을 얻는다.
이는 여동빈 내단 사상의 핵심 강령이다. 여동빈은 『노자?의 도론에 근거하여 우주만물의 생성과 변화의 역동적 과정을 설명한다. 첫째는 우주만물의 본체를 뜻하는 ‘일’로서의 체體이고, 둘째는 우주만물의 작용을 뜻하는 ‘이’로서의 용用이며, 셋째는 우주만물의 창조적 변화작용을 뜻하는 ‘삼’으로서의 조화造化이다. ‘일’은 일기를 뜻하고, ‘이’는 음양을 뜻하며, ‘삼’은 음양의 작용으로 일어나는 우주만물의 창조적 변화작용을 뜻한다. 도에서 분화된 일기와 음양의 작용으로 우주만물의 창조적 변화작용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조화는 결국 체용합일과 음양합일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도의 유기적 통일성에서 본체와 작용, 즉 일기와 음양이 분화되고 양자가 서로 융합하여 그 조화작용으로 천지인 삼재가 생성된다. ‘삼재조화三才造化’이다. 종려는 도의 통일성에 근거를 둔 체용합일과 음양합일을 천지인 삼재의 창조적 변화작용이라는 의미에서 ‘삼재조화’로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천지인 삼재는 모두 하나의 도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에 도와 삼재는 셋이면서 하나인 관계를 이룬다. 도에서 일기가 생겨나고 일기에서 음양이기가 생겨나며 음양이기가 하나로 화합하여 천지인 삼재가 생겨나며 천지인 삼재에서 오행이 생겨나며 오행에서 만물이 생겨난다. 사람은 만물 가운데서 가장 신령하고 존귀한 존재이다. 사람이 만물의 이치를 궁구하고 자기의 본성을 실현하며 목숨을 온전히 하고 자기의 생명을 보전함으로써 대도에 합치한다면, 천지처럼 장구한 존재가 될 수 있다. 이것이 신선이 되는 내단 수련의 과정이자 목표이다.
내단 수련의 중심과제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순順’과 ‘역逆’의 문제이다. 둘째, ‘성性’과 ‘명命’의 문제이다. 셋째, ‘양陽’과 ‘음陰’의 문제이다. 내단 수련에서 무엇보다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순順’과 ‘역逆’의 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우주만물의 변화과정에 순응할 것인가, 아니면 거역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도교 내단학에서 ‘순順’과 ‘역逆’의 문제는 우주생명의 존재근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 신선이 되는 일이다. 신신이 되는 길은 우주만물의 변화과정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거역하는 데 있다. 우주만물의 변화작용에 순종하면 범인이 되고, 거역하면 신선이 된다.
노자에 따르면, 우주만물의 변화과정은 도道에서 일一이 생겨나고 일一에서 이二가 생겨나며 이二에서 삼三이 생겨나며 삼三에서 만물이 생겨나는 역동적 과정을 이룬다. 이런 우주만물의 변화과정에 순종한다면, 모든 생명은 결국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생겨난 모든 존재는 언제가는 한 번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도교는 우주만물의 변화과정에 역행하여 모든 생명의 존재근거인 도로 복귀한다면 신선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내단 수련의 핵심과제는 우주생명의 원초적 고향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는 역도逆道에 있다. 우주만물의 모태인 대도大道로 돌아가는 것이다. 후천에서 선천으로 다시 돌아가는 데 있다. 후천에서 선천으로 돌아가는 것은 천지만물의 변화과정에 역행하여 태초의 원초적 상태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이는 결국 인간이 우주만물의 참모습으로 되돌아감을 뜻한다. 인간이 천지만물과 하나가 될 수 있다면, 생겨나지 죽지도 않는 ‘불생불사不生不死’의 영원한 몸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 내단 수련의 핵심과제의 하나는 성명쌍수론의 문제이다. 여동빈은 「고효가敲爻歌」에서 이렇게 말한다.
본성만 닦고 목숨을 닦지 않는 것은 수행의 첫째 잘못이다. 조상이 남긴 본성만 닦고 단을 닦지 않는다면 만겁토록 음령이 성인의 경지에 들어가기 어렵다. 명종만 닦고 조상이 남긴 본성에 미혹되면 얼굴을 비추려 하되 거울이 없는 것과 같다. 목숨이 천지와 같아도 한 사람의 어리석은 사내이고, 집안의 재산을 관장하되 주인이 없는 것이다. 성명쌍수는 현묘하고 또 현묘하니, 바다 밑바닥의 큰 파도가 법선을 띄웠네.
도교는 남종의 ‘선명후성先命後性’이든 북종의 ‘선성후명先性後命’이든 모두 ‘성명쌍수性命雙修’를 근본으로 삼는다. 내단 수련의 목표는 본성과 목숨을 동시에 수련하여 우주생명의 근본으로 회귀하는 데 있다. 여동빈의 내단 사상은 성과 명, 형과 신을 동시에 수련하는 데 그 중점이 있다. 성명쌍수性命雙修와 형신병련形神幷煉을 통해 우주생명의 근본이자 근원으로 환원하는 ‘반본환원返本還元’에 있다. 정精과 기氣와 신神은 사람이 내단을 수련하여 불로장생不老長生하게 해주는 세 가지 보물이다. 내단을 수련하여 우주생명의 원초적 고향으로 돌아가면, 살아서 그에 합당한 보답을 받을 것이다. 영원히 살 수 있는 신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 내단 수련의 핵심과제는 음양교구陰陽交媾의 문제이다. 장백단은 『오진편서?에서 “음양을 명확히 알고자 한다면, 조화에 깊이 통달해야 한다.”라고 하여, 음양陰陽과 조화造化의 관계를 제시하고 있다. 여동빈의 내단론에서 음양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여동빈에서 음양교구는 두 가지 측면에서 나눌 수 있다. 첫째, 하늘과 사람의 음양교구이다. 음양교구는 음양이 교접 또는 교합한다는 뜻이다. 대우주와 소우주의 관계를 중심으로 음양이 어떻게 교합할 수 있는가를 탐색하는 것이다. 천지의 음양조화와 인체의 음양조화의 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것이다. 둘째, 사람의 몸안에서 일어나는 음양교구의 문제이다. 사람의 몸안에서 음양조화가 어떻게 발현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여동빈 내단설은 몸안에 있는 선천의 음양의 기를 조화시키는 데 그 핵심이 있다. 인체를 화로와 솥으로 삼고, 정기신을 약물로 삼는다. 모체 속의 태아로써 정기신을 응결하는 것을 ‘성태聖胎’라고 한다. 내단 수련은 수화水火의 음양의 기, 즉 신장에서 진양眞陽의 기를 추출하고 심장에서 진음眞陰의 기를 결합하여 ‘성태聖胎’를 기르는 데 있다. ‘성태’는 ‘영아嬰兒’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음양의 기가 결합하여 생긴 금단金丹의 다른 이름이다.
여동빈은 「칠언」에서 “하늘이 한 물건을 생겨나게 하여 삼재로 변화하니, 음양이 교감하여 성태를 맺는다.”라고 하였다. 또한 「칠언」에서 “약반은 곧 참된 도사이고, 단환은 본래 성태선이다.”이라고 하였다. 약반葯返은 금단의 대약이 완성되는 것이고, 단환丹還은 신과 기가 단전에서 형상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약반과 단환은 모두 내단의 수련이 완성된다는 측면에서 같은 뜻이다. 중요한 것은 여동빈이 참된 도사가 되는 ‘성태선聖胎仙’을 주장한다는 사실이다. ‘성태선’은 ‘성태’를 결성하여 신신이 된다는 뜻이다.
4. 여동빈과 증산도
증산도의 핵심사상은 신선 사상이다. 증산도의 핵심과제는 후천 신선문화를 발양하여 조화선경세계를 여는 데 있다. 증산도는 지상에서 신선이 되는 길을 통해 신선의 세계화, 대중화, 일상화를 목표로 삼는다. 증산 상제는 “누가 용감히 부귀영화 물리치고 신선의 길을 찾을 수 있으리오. 誰能勇退尋仙路리오(『도전 7:62:2)라고 하였다. 태모 고수부는 “내가 하는 일은 다 신선(神仙)이 하는 일이니 우리 도는 선도(仙道)니라. 너희들은 앞으로 신선을 직접 볼 것이요, 잘 닦으면 너희가 모두 신선이 되느니라.”(『도전 11:199:7-8)고 하였다.
증산 상제는 “나의 일은 여동빈(呂洞賓)의 일과 같으니”(『도전? 7:84:3)라고 하였다. 여동빈이 평생토록 추구했던 지상신선의 길이 증산도의 신선사상이 추구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여동빈은 선관의 조화능력을 지니고 모든 사람을 불로장생케 하려고 하였다. 선관은 천상의 조정에서 관직을 가진 신선을 말한다. 증산도에서 여동빈은 태을선 조화문명을 구축하는 주춧돌이다.
천지 안에 있는 말은 하나도 헛된 것이 없느니라. 세간에 ‘짚으로 만든 계룡’이라는 말이 있나니 그대로 말해 주는 것을 사람들이 모르느니라. 또 나의 일은 여동빈(呂洞賓)의 일과 같으니 동빈이 사람들 중에서 인연 있는 자를 가려 장생술(長生術)을 전하려고 빗 장수로 변장하여 거리에서 외치기를 ‘이 빗으로 빗으면 흰머리가 검어지고, 빠진 이가 다시 나고, 굽은 허리가 펴지고, 쇠한 기력이 왕성하여지고 늙은 얼굴이 다시 젊어져 불로장생하나니 이 빗 값이 천 냥이오.’ 하며 오랫동안 외쳐도 듣는 사람들이 모두 ‘미쳤다.’라고 허탄하게 생각하여 믿지 아니하더라. 이에 동빈이 그중 한 노파에게 시험하니 과연 흰머리가 검어지고 빠진 이가 다시 나는지라 그제야 모든 사람이 다투어 사려고 모여드니 동빈이 그 때에 오색구름을 타고 홀연히 승천하였느니라. 간 뒤에 탄식한들 무슨 소용 있겠느냐! ( 『道典? 7:84:1~10)
증산도 『도전?에서는 여동빈이 무창의 천심교에서 빗을 팔았던 사실을 구체적인 실례로 들고 있다. 그 구체적인 전거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여조가 무창의 천심교에서 노닐면서 성과 이름을 속이고 해진 나무빗을 팔았는데, 값으로 천 냥을 부르니 몇 달이 되도록 팔리지 않았다. 별안간 음식을 구걸하는 노파가 있었는데, 나이는 팔십세였다. 노쇠하여 등이 굽고 머리카락이 빠져 흰 눈과 같았다. 여조가 그녀에게 일러 말하였다. ‘세상 사람들은 눈앞의 것만 보고 늘 보는 것에 집착한다. 내가 해지고 더러운 것을 비싼 값으로 파는 것이 어찌 뜻이 없겠는가? 그런데도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뛰어난 견해가 없으니, 또 함께 도를 말할 만하겠는가?’ 이에 빗으로 노파의 머리카락을 빗는데, 머리를 빗으니 머리카락이 길어지고, 숱 많고 검은 머리카락이 땅에 떨어지며, 모습은 젊은이로 변했다. 뭇 사람들이 비로소 신기하게 여기고 다투어 빗을 찾았다. 여조가 웃으면서 말했다. ‘보고도 알지 못하더니, 알고도 보지 못하누나.’ 곧 다리 밑에다 빗을 던지고 푸른 용으로 변하여 날아갔다. 여조와 노파가 모두 보이지 않았다. 뒤에서야 비로소 그가 여동빈 신선임을 알았다.
이 글의 제목은 「무창에서 빗을 팔다(무창육소武昌鬻梳)」이다. 고수부는 여동빈 선관의 역할을 천하창생을 소년으로 다시 환골탈태를 시키는 데 있다고 강조한다.
이어 태모님께서 여동빈을 부르시고 잠시 후에 “하늘을 보라.” 하시므로 모두 하늘을 바라보니 구름이 선관의 모양을 이루고 서 있거늘 성도들에게 물으시기를 “보이느냐?” 하시매 모두 “뵈나이다.” 하고 아뢰니라. 태모님께서 선관 모양의 구름을 향하여 명하시기를 “세계 창생들로 하여금 모두 갱소년 되게 하라.” 하시니 그 구름이 머리를 숙여 명(命)을 받드는 형상을 하며 동쪽 하늘로 물러가더라. 태모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앞세상에는 흰머리가 나지 않게 할 것이며 허리도 굽지 않게 하리라.” 하시니라.(『道典? 11: 298:3-7)
천상 여동빈 선관(仙官)의 조화권능으로 머리 빗겨 갱소년(更少年)시켜 주옵소서.(『道典? 11:210:4)
증산도 『도전道典?에서는 여동빈 신선사상의 핵심을 조화사상에 있다고 본다. 고수부가 말하는 “여동빈呂洞賓 조화造化”(『도전? 11:390:4)가 바로 그것이다. 증산도의 후천 선사상은 인간이 우주만물과 하나가 되어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한다. “내 세상은 조화선경이니, 조화로써 다스려 말없이 가르치고 함이 없이 교화되며 내 도는 곧 상생이니, 서로 극(剋)하는 이치와 죄악이 없는 세상”(『도전 2:19:1-2)을 열려는 것이다. 후천의 조화선경造化仙境, 지상선경地上仙境, 현실선경現實仙境을 열고자 하는 것이다.
증산도의 후천 선사상은 선도의 조화造化로 불로장생과 불사장생의 선경세계를 만들어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선풍도골仙風道骨이 되게끔 하는 데 그 궁극적 목표가 있다.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때가 오면 너희들은 모두 환골탈태(換骨奪胎)하여 선풍도골(仙風道骨)이 되느니라.’ 하시니라.(『도전 7:59:5)
증산도에서 말하는 신선은 후천의 지상신선으로서의 태일선太一仙 또는 태을선太乙仙이다. 태일선 또는 태을선은 우주만물과 하나가 되어 신천지와 신문명을 새롭게 여는 창조적 주체로서의 신인간을 뜻한다. 후천의 선문화는 무극대도의 신선공부를 통해 선천세상의 상극질서를 개벽하여 온 생명이 독자적 자유를 맘껏 누리면서도 우주적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갈 수 있는 지상선경을 열고 태을신선太乙神仙으로서 거듭나는 데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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